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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칼럼채권채무

돈 안 갚으면 사기일까

빚 없는 회사가 어디 있냐고 할 정도로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안팎으로 여러 가지 명목의 채무가 생겨난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도 하고, 거래업체나 지인들에게서 돈을 빌려 부족한 운영자금을 메워 기업을 꾸려나간다. 

그런데 돈을 빌려주는 사람으로서는 상대가 돈을 떼어먹을 사람은 아니겠거니, 그래도 회사를 운영한다는 사람이니 돈을 어느 정도 갚을 능력은 될 것이라 생각하며 돈을 빌려줄 것이다.


◇채무불이행과 사기의 경계…"주머니 사정 뻔히 알고도 빌려줬다면 '무죄'"


하지만 그런 상대가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점점 연락도 잘되지 않아 너무나 괘씸할 때, 기다리다 지친 채권자가 생각하는 방법은 채무를 갚으라며 제기하는 민사소송과 이렇게 나를 속여먹은 사기꾼을 처벌해 달라는 형사고소이다.

보통 채권자들은 채무자에 대한 형사고소에 대해 상담하며 본인이 상대방에게 돈을 빌려주고 상대가 이를 안 갚고 있는 정황은 분명하니 쉽게 사기죄가 성립되고, 상대방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돈을 빌린 이후에 못 갚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와 같은 '차용금 사기'의 성립에 대해 점차 더욱 구체적이고 엄격한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판례의 사안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회사의 대표이사가 회사 운영상황이 점점 악화되어 대출금 상환도 어렵게 되고 심지어 임대료조차 지급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는 부사장과 재무담당 이사에게 "돈을 빌려주면 빠른 시일 내에 갚겠다"라며 돈을 빌린 사안에서, 대법원은 사기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2011.10.13.선고 2011도8829 판결).

즉 피해자들이 회사의 부사장과 재무담당 이사로 근무하며 자금조달과 투자유치업무를 직접 수행해왔기 때문에 피고인이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해오지 않는 한 자력으로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는 것이 무죄 판단의 주된 이유였다.

사기죄 성립을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기망행위에 의해 속아서 돈을 빌려준 것이어야 하는데,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속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빌려준 것이라면 이를 사기죄로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돈 빌릴 때 갚을 의사·능력 있었다면 못갚아도 사기는 아니다"

대법원은 2015년 이에 더 나아가 돈을 '빌릴 당시'에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나중에 자력이 약화돼 갚지 못하였더라도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5.6.30.선고 2015도1809 판결).

돈을 빌릴 당시 피고인의 재산상태로 보아 그 정도의 채무는 갚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몰라도 그 당시에는 갚을 능력과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고인이 돈을 빌리면서 피해자에게 '회사가 부도위기에 있다'고 말하며 회사의 재정상황을 숨기지 않은 점, 피고인과 피해자가 이웃에서 25년간 거주하며 서로 잘 알고 있었던 점을 들며, "피해자가 단순히 돈을 갚겠다는 피고인의 말만 믿고 돈을 대여해 줬다기 보다는 오랜기간 알고 지낸 신뢰에 터잡아 돈을 빌려준 것으로 볼 여지도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사기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이와 같은 판례의 경향은 민사사건의 형사화를 경계하는 태도라 볼 수 있다. 채무문제는 가급적 당사자들끼리 또는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할 일이고, 이에 국가 형사권이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견해의 반영으로 보여진다.

물론 형사사건화되면 이에 압박을 느낀 채무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변제에 나선다든지 하는 점은 채권자에게 이득일 것이다. 그리고 돈을 빌려주고 못받는 것은 온전히 나의 판단에 대한 나의 책임이라는 소리가 채권자로서는 야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가 형사권이 개인간의 영역에 언제든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발동되는 것이 항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개인의 영역은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이런 판례의 경향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진석 변호사 상속증여, 채권채무, 성범죄, 이혼,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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