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공고를 내면 로스쿨 졸업 변호사들은 자신이 쓴 서면과 소장을 첨부해 지원서를 냅니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 보면 오히려 첨부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서울 역삼동에서 소형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한 변호사의 말이다. 변호사시험 출신 변호사, 이른바 '로변'(로스쿨 변호사)에 대한 법조계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뒤늦은 합격률 조정…'실력 하향평준화' 인식 퍼져

로변들의 실력을 둘러싼 논란은 로스쿨 도입 초기 법무부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논의하면서부터 예고됐다.

2009년 로스쿨 1회 입학생을 받고도 법무부는 변시 합격자 수를 제한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정원을 몇 명으로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법무부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40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입학한 뒤인 2010년 말이 돼서야 뒤늦게 합격률 조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법조계는 한 바탕 홍역을 치렀다. 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합격자 수를 입학 정원 대비 50%(매년 1000명)로 제한하자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도입 취지를 고려해 응시생 80% 이상을 합격시키라는 로스쿨 학생들이 충돌한 것이다. 로스쿨생들은 법무부가 있는 정부과천청사로 자퇴서를 들고 찾아가 항의했다. 로스쿨 학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첫 사례였다.

결국 법무부는 '입학정원 대비 75%', 즉 매년 1500명을 선발하는 타협안을 내놨다. 그 결과 당초 검토한 것보다 합격률이 상향 조정되며 '실력이 하향평준화됐다'는 부정적 인식이 깔리기 시작했다.

◇자격시험에서 선발시험으로…'합격률 높은 사시' 된 변시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변시가 기존 계획인 자격시험이 아니라 선발시험으로 변질된 데 있다.

로스쿨의 취지 가운데 하나는 법조인을 시험을 통해 '선발'하던 사시와 달리 교육을 통해 '양성'하자는 것이다. 변시는 로스쿨 교육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기 위한 자격시험으로서 계획됐다. 의·치학 전문대학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격시험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인위적인 합격률 조정에 나서며 변시는 사실상 선발시험이 됐고, '로스쿨 출신만 볼 수 있고, 합격률이 높은 사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로변들은 '함량 미달'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전국에서 많아야 1000명을 배출하던 사시에 비하면 로변은 제한된 사람들끼리 경쟁해 훨씬 높은 합격률을 보장받았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치전원 학생을 친구로 둔 한 로스쿨생은 "의·치전원은 졸업생들이 매년 합격률 90%를 넘지만 실력이 떨어진다는 논란은 없다"며 "매년 누적되는 재수생 때문에 응시자 대비 합격률이 60% 초반인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왜 실력 논란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리도 모르는 로변?…"졸업 후 직업교육 받도록 만들어진 제도"

로변들이 법원에 낼 서면조차 쓸 줄 모른다는 평가도 왜곡된 면이 있다는 것이 여러 법조인들의 설명이다. 제도의 취지를 오해했기 때문에 이 같은 평가가 나온다는 것이다.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로스쿨은 사법연수원 1년차 과정까지 소화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연수원 2년차 과정 중 상당 부분이 법원이나 검찰, 로펌에서 받는 현장 연수인데, 로스쿨 교육은 이 과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갓 변시를 통과한 변호사들은 부족한 교육을 사회에서 받게 돼 있다. 6개월 동안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혼자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형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받는다.

'변호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사실상 수습 기간 동안은 사법연수원생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이 기간에 실무에 다소 미숙한 것은 제도의 특성상 예정돼 있는 부분이다.

박시환 전 대법관(인하대 로스쿨 교수)은 "의사의 경우 시험은 자격시험으로 하고 인턴과 레지던트로 훈련시켜 양성한다"며 "로스쿨도 기본적인 법적 소양을 갖춘 다음 각 분야에서 필요한 직업교육을 받도록 도안된 제도"라고 지적했다.

◇변호사 자격증 없는 교수들로 채운 로스쿨…실력 논란 씻어야

물론 로변들의 실력을 둘러싼 논란이 모두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행 로스쿨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선발이 아니라 양성을 목표로 한다면 로스쿨은 교육 자체만으로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로스쿨 교수 상당 부분이 변호사 자격이 없는 기존 법대 교수들로 채워졌다. 로스쿨 교수 중 변호사 자격을 갖춘 이들의 비율은 전국 평균 30% 안팎으로 설립요건(20% 이상)을 간신히 채운 곳도 많은 실정이다.

이는 몇몇 학교들이 여건도 되지 않으면서 로스쿨을 유치하고 당초 계획만큼 투자하지 못한 결과다. 대부분의 로스쿨은 재정 문제를 이유로 판·검사 출신 교수를 임용하는 데 난색을 표한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현재 로스쿨은 의사 자격도 없는 이들이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떤 방식으로든 실력 논란을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로스쿨 제도는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