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보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1988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시작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고법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2014년 제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하고, 지난 2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판부로 복귀했다. 법원 내 환경법 커뮤니티 회장, 서울고법 환경전담 재판장을 맡는 등 환경법 전문가로 꼽힌다.

폐기물 불법 매립해 토지 오염…손해배상 결정

그는 공장부지에 오랜 기간 폐기물을 불법 매립해 토양을 오염시킨 후 부지를 판 토지소유자에게 불법행위 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부장판사였던 2009년 당시 김 부장판사는 테크노마트 건설시행사인 프라임개발이 기아자동차와 세아베스틸(옛 기아특수강)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46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당시 프라임개발은 신도림 테크노마트 건설을 위해 땅을 샀는데, 토지환경평가 결과 부지 전역에 폐콘크리트,폐타이어 등으로 이뤄진 주물공장이 매립돼 여기서 유출된 기름 등으로 토지가 심각하게 오염된 사실을 발견했다.

1심 재판부는 34억여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는데 기아차 측은 "주물공장 철거 및 매립에 참여한 바 없고 토양 오염 사실을 몰랐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오염행위를 숨긴 것으로 판단, 배상액을 높여 46억원으로 결정했다.

울산 보도연맹 사건 국가 배상책임 없다…1심 뒤집어

그는 또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인 '울산보도연맹 사건'의 유가족들에게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울산보도연맹은 해방 직후 이승만 정부가 좌익 세력 전향을 명분으로 조직한 단체로, 한국전쟁이 터지자 정부는 보도연맹원을 강제 구금하고 집단 총살했다. 이후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희생자 명단을 확정 발표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였던 2009년 당시 김 부장판사는 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족 50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때부터 5년이 경과한 1955년 8월 시효가 완성됐다"며 시효가 지나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고 했다.

이에 앞서 1심 재판부는 "유족들이 그동안 희생자들의 사망 여부나 경위 등을 알지 못했던 사정을 고려할 때 사건의 손해배상 소멸시표가 지났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는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후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의 판결을 뒤집고 "국가가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국가는 희생자와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정수장학회 강제로 뺏겼지만 돌려받을 수 없다

김 부장판사는 5·16 쿠데타 후 "국가가 강탈한 주식을 돌려달라"며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 김지태씨 유족들이 정수장학회 등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양도 청구 소송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는 인정되지만 시효가 지나 되돌려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산지역 기업인이던 고 김지태씨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요구한 혁명자금을 거부하다 1962년 외환관리법, 부정축재처리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재판을 받다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부일장학회와 부산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주식 등을 정권에 강제 기부 당했다. 이 재산으로 5·16 장학회가 설립됐는데, 이후 1982년 전두환 정권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 정수장학회로 명명됐다.

2013년 김 부장판사는 "5·16 군사 혁명 정부가 중앙정보부를 이용해 김씨의 주식을 강압적으로 헌납하게 한 것은 인정된다"면서도 "강박 정도가 의사 결정 자유를 완전히 박탈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주식 반납이 불가능한 경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이후 3년이 지나고 소송이 제기돼 시효기간이 지나 성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