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때에 성립(형법 제307조)한다. 여기서 '공연히'라는 공연성(公然性)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때 '불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면 그 사람들이 다수이든 소수이든 상관없고, '다수인'이라면 특정한 사람들이든 불특정한 사람들이든 묻지 않는다.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법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지만, 대법원은 "말을 전달 받은 사람이 다른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그 말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전파가능성설)"라고 보고 있다.

◇ 비밀 보장된 대화 속 명예훼손 발언은 '무죄'

대법원(대법원 1981.10.27. 선고 81도1023 판결)은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게 사실을 유포했다고 해도 이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한다"면서 "이와 달리 전파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라면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는 공연성이 없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대법원은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한 사람'일 경우,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전파될 가능성이 있고, 없고를 달리 판단한다.

A라는 사람이 B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어떤 한 사람'에게 말할 때를 예를 들어 보자.

소문을 듣는 어떤 한 사람이 B의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한 친구일 경우라면 그 소문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아마 그 사람은 B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라도 들은 이야기를 비밀로 해 줄테니, 전파될 가능성에 따라 명예훼손죄를 판단하는 대법원에 따르면 말을 한 A는 B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대법원은 A가 B와 단 둘이 식당 방에 앉은 자리에서 B의 친척 C에 대한 비방을 한 경우, 전파가능성이 없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대법원 1981.10.27. 선고 81도1023 판결)가 있다.

그런데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일반적으로 전파가능성이 없다고 볼 사이인 부부 간이라도 이혼소송을 준비하는 등 특수한 상황이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혼을 앞둔 부부는 오히려 본인들이 나서 제3자에게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부부 간의 서로에 대한 비방은 명예훼손죄를 구성할 여지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부부 간이라도 전파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서로에 대한 비방을 하면, 명예훼손죄를 구성할 수 있다.

대법원은 아내가 이혼소송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남편의 친구에게 남편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내용(그들의 이혼 사유)을 언급한 편지를 보낸 경우에는 피해자에 해당하는 남편과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 간의 관계가 친구이고, 편지는 그 친구만 읽게 보냈던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야기가 공공에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대법원 2000.02.11. 선고 99도4579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이 판례 역시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이 피해자와 신뢰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것이다.

◇ 기자는 일반인보다 입이 무겁다?…"취재만 하고 보도 안했다면 괜찮아"

소문을 듣는 어떤 한 사람이 '기자'라면 어떨까?

보도를 하는 일이 직업인 기자에게 한 말은 보통 사람들에게 한 말보다 대중에 알려질 가능성이 클테니, 한 명의 기자에게 한 말이라도 전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법원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자에게 한 말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기 전까지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기자에게 한 말은 '보도'가 돼야 전파가 된 것이며, 아직 보도되기 전이라면 전파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법원의 입장은 곧 보통 사람들보다 기자의 입을 무겁다고 보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런 대법원의 입장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소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청자(聽者)가 ‘기자’인 경우에는 보통 사람의 경우처럼 신뢰관계에 따라 전파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면 그때서야 전파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보도되기 이전에 기자에게 한 말은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는 점에서 결국 비보도성으로 기자와 한 대화는 보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만, 명예훼손죄가 유죄가 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 경우여야 하므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된다고 해도 무조건 모든 경우에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형법(형법 제310조)은 예외적으로 △진실성과 △공익성이 인정된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도록 위법성 조각의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따라서 기자에게 한 말이 보도가 됐더라도 그 내용이 진실하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이라면 제보자에게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에는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기자에게 허위사실을 잘못 알려 보도가 되고 그 내용이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면 유죄가 인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