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합헌 결정을 내려 떠들석했던 날, 헌재는 또 다른 결정을 발표했다. 4년간 끌어온 '구 군형법 제92조5'에 대해 '5대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 이는 2013년 법이 개정되면서 현재는 '군형법 제92조의6'에 해당한다.

4년만에 '합헌'결정…"남자는 안되고 여자는 된다?"

군형법 제92조의 각 항목들은 강간이나 유사강간, 강제추행을 저지른 자, 미수범 등을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92조의2는 '폭행과 협박'으로 유사강간 행위를 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제92조의3은 '폭행과 협박'으로 강제추행을 한 사람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에 대한 처벌 규정도 있다.

이 법에 따라 군인은 강간·추행죄를 저질렀거나 또는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시도하다 걸렸다면 처벌을 받는다. 모든 군인에게 해당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군인은 강제로 강간·추행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다.

'제92조의6'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뭘까. 이 조항은 이렇다.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른 조항과 달리,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항문성교'와 '그 밖의 추행'이 있었으면 처벌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이었든, 그 순간 느낌이 통했던, 합의를 했거나 안했거나 등은 상관이 없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동성애차별법' '동성애금지법'이라고 부르지만, 또 이를 없애면 '동성애허용법'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조항을 문자 그대로보면 동성애자만 처벌하는 법은 아니다.  남녀간이라도 '항문성교'를 하거나 '그 밖의 추행'이 있었다면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법은 '군인'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남녀불문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대해 헌재는 "(이 조항은)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행위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봤다. '그 밖의 추행'에 대해서도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폭행과 협박' 같은 강제성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동성 군인이 서로 성적 만족 행위를 했다'면 둘다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헌재는 '항문성교'가 '남성' 사이 성관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동성 사이 비정상적 성적 교섭'에 해당하는 조항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여성 동성애자들의 성적 교섭은 괜찮을까?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다"

모호하다. 4명의 헌법재판관 역시 모호하다고 판단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5명의 다수 의견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강제성 여부가 불명확해 자발적 합의에 의한 음란행위와 폭행·협박에 의한 추행을 동등하게 처벌하도록 해 모순이 있다 △행위의 정도를 모호하게 규정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해석과 적용을 초래한다 △남성의 추행만을 대상으로 하는지, 여성간의 추행이나 이성간의 추행도 대상으로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사실 '강간과 추행'은 제92조의 다른 법 조항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92조6를 둔 이유는 역시 '동성애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다. 한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는 "군대 상사에게 추행을 당한 남성이 신고를 했는데, 이성애자라고 주장한 상사는 처벌을 받지 않았고, 동성애자임을 밝힌 남성만 이 조항을 근거로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고 피해자가 '그 밖의 추행이 있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셈이다. 물론 군은 군형법 제92조3을 적용해 '폭행과 협박'으로 강제추행을 한 상사를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동성애자 피해 남성에게 제92조의6을 적용했다. 제92조6은 '동성간 성적 접촉'이 있었다는 것 만으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말하고 있지만, 간단하게 피해 남성은 동성애자라서 벌을 받았다. 법이 모호하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누가봐도 '차별적'이다. '차별적'이라는 것은 헌재도 인정하고 있다. 헌재는 "동성 군인이 이성 군인에 비해 차별 취급을 받는다해도 군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존을 위한 제한으로 차별 취급의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차별은 맞지만 '군의 전투력'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2014년 법 바꾼 미국…1962년에 머물러있는 한국

사실 이 조항을 두고 헌재가 처음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2002년 6대2 의견으로, 2011년에는 5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 이유도 2016년 헌재가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수의 헌법재판관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나아가 국가존립과 모든 자유의 전제조건인 국가안보를 위한 전투력 보존을 위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