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계약은 보험계약 당시 명시한 종류의 사고, 즉 '보험사고'로 인해 피보험자가 사망하면 보험계약 당시 보험금을 수령할 사람(수익자)으로 지정해 둔 사람이 보험금을 지급 받도록 하는 계약이다.

이처럼 피보험자와 수익자가 달리 지정될 수 있게 돼 있는 생명보험계약은 보험금을 노린 범행으로 이어질 부작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보험금을 받기 위해 살인 청부업자와 손을 잡은 남편의 보험 사기 행각을 다룬 대법원 판례(99다49064)가 있다.

아내와 둘이 살던 A씨는 자신의 경제 사정이 악화되자, 보험 사기를 계획했다. 그는 아내 B씨를 피보험자로 하여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사고로 위장해 아내를 살해하고 보험금을 편취하기로 마음먹고, 살인 청부업자까지 소개 받았다.

지인을 통해 살인 청부업자 C씨를 소개 받아 아내를 교통사고로 가장해 살해하기로 공모한 A씨는 한 달 뒤 보험회사와 아내 몰래 B씨를 피보험자, B씨의 상속인인 자신과 아내의 어머니를 보험수익자로 하는 보험계약을 맺었다.

한 차례 보험료를 납부한 뒤 A씨와 C씨는 일전에 공모했던 대로 새벽녘 A씨가 공사장으로 B씨를 데려오자 대기 중이던 C씨가 택시를 운전해 그녀를 차로 들이 받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만들었다.

A씨는 보험사고인 교통사고로 B씨가 사망했으므로 보험회사가 보험수익자인 A씨와 B씨의 친정어머니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보험회사 측은 조사 결과 교통사고가 보험계약자인 A씨의 계획에 의한 살인이었다는 사실을 이유로 A씨뿐만 아니라 B씨의 친정어머니에 대한 보험금 지급까지도 거절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의도를 가지고 계약한 보험계약의 효력과 △범죄를 저지른 A씨가 아닌 다른 상속인인 피보험자의 친정어머니까지도 보험금을 지급 받을 수 없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보험회사는 누구에게도 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며 보험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생명보험계약은 사람의 생명에 관한 우연한 사고에 대해 금전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것"이라며 "금전을 취득할 목적으로 고의로 피보험자를 살해하는 등의 도덕적 위험의 우려가 있으므로, 그 계약 체결에 관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기한 선의가 강하게 요청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당초부터 오로지 보험사고를 가장해 보험금을 취득할 목적으로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불법적인 행위를 유발할 위험성이 크고, 이런 목적으로 체결된 생명보험계약에 의해 보험금을 지급하게 하는 것은 보험계약을 악용해 부정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행심을 조장한다"며 "이러한 생명보험계약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 청부업자와 공모해 아내를 살해한 A씨가 보험회사와 한 보험계약은 그 자체가 아예 무효여서 그런 효력이 없는 보험계약에 따라서는 A씨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보험금을 지급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결국 아내를 살해할 목적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했던 보험계약의 당사자 A씨뿐만 아니라 전혀 보험계약의 과정이나 B씨의 살해 과정에 대해 알지 못했던 다른 보험수익자인 B씨의 친정어머니까지도 모두 보험금을 받을 수 없었다.

◇ 판결 팁 = '피보험자'와 '보험가입자'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피보험자'란 생명보험계약에서 사람이 사망하는 보험사고 발생의 '객체', 즉 사고를 당한 사람을 의미하며, 손해보험계약에서는 보험사고가 발생함으로써 손해를 입은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피보험자는 반드시 보험 계약의 당사자(보험가입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한편, 보험자인 보험회사 등로부터 보험의 목적인 보험금을 받게 되는 사람을 '보험수익자'라고 한다. 손해보험의 경우 피보험자가 곧 보험수익자가 되지만, 생명보험의 경우는 피보험자와 보험수익자가 다를 수 있다.

위 판례는 생명보험에 관한 보험사기를 다룬 것으로 보험계약자이자 수익자인 A씨와 피보험자인 B씨가 다를 수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 관련 조항

-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 상법

제659조(보험자의 면책사유) ①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