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약사법은 양약을 판매하는 약사와 한약재를 판매하는 한약사를 별도의 직군으로 나누고 있으며, 자격시험 역시 별도로 시행되게 하고 있다.

한약방을 운영하는 한약업사와 관련해 약재를 판매할 때마다 구매자들에게 약재의 성분과 복용방법 등을 상세히 설명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지, 그 설명의무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됐던 대법원 판례(2001다56904)가 있다.

A씨와 B씨는 부부였다. A씨는 남편 B씨가 다리가 저린다고 하자, 이를 치료하는 데에 ‘초오’라는 한약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약업사인 C씨가 운영하는 한약방을 찾았다. A씨는 C씨에게 '초오'를 달라고 했고, 그로부터 초오 32g을 1000원에 구입했다. C씨는 A씨에게 초오를 명태 1마리와 같이 달인 뒤, 식혀서 조금씩 몸에 맞춰 먹으라며 복용 방법을 설명했다.

초오를 사서 집으로 온 A씨는 C씨가 알려준 방법대로 초오 32g을 명태 1마리와 같이 달였고, 커피 1잔 정도의 분량이 나오자 이를 부엌에 그냥 두었다가 다음날 오전, 이를 커피잔에 부어 남편 B씨에게 한 번에 다 마시게 했다.

B씨는 초오 달인 물을 마신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얼굴 등에 마비 증세가 오기 시작하다 이내 숨을 거뒀다.

초오에는 아코니틴이라는 독성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보통 그 독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명태와 함께 충분히 달인 뒤, 차게 해 조금씩 마셔야 했지만, B씨가 이를 한꺼번에 다 마셔 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A씨는 C씨를 상대로 "초오를 판매하며 복용방법을 설명할 때, 초오의 독성과 부작용 등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며 "초오에 이런 독성이 있는 줄 몰라 남편에게 먹게 해 그를 죽게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해 줄 것을 청구했다.

하지만 C씨는 "복용방법을 설명하며 식혀서 조금씩 몸에 맞춰 먹으라고 말했다"며 "조금씩 먹게 하지 않고 한꺼번에 달인 물 전량을 남편에게 복용하게 한 것은 A씨의 잘못"이라고 항변했다.

대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약업사 제도의 취지와 한약재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한약업사는 한약재의 성분과 효능 및 용법 등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라며 "적어도 그 용법이나 용량이 어떠한지에 따라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한약재를 일반인에게 판매할 때는 신의칙상 매수인에게 그 효능 내지 위험성과 안전한 용법 등을 상세히 알려 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한약재에 있어 전문가인 한약업사는 한약재를 사가는 사람에게 그 복용 여부나 복용방법에 관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C씨가 초오를 판매할 당시 위 한약재의 독성과 생명에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 관해 주의를 환기해 주면서 그 독성이 해독되는 데 필요한 달이는 시간과 1회 복용량, 희석 정도에 관해 최소한의 설명만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A씨가 부주의하게 다량을 달여 그 농축된 액을 남편 B씨에게 먹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B씨가 사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므로, 한약업사에게 B씨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의무를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으로 한약업사 C씨는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으로 구매자 A씨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줘야 했다.

◇ 판례 팁 = 한약업사는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의료인의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약사와 함께 약사법상의 규제를 받는 한약재에 관한 전문가다. 따라서 한약사 역시 약물에 해당하는 한약재를 판매할 때에는 전문가로서 비전문가에게 주의사항 등을 설명해주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런 설명의무는 법에 명시된 의무는 아니지만, 우리 판례가 인정하는 신의칙(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의 원칙')상의 의무로, 전문가가 부담하는 일반인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 관련 조항

-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 약사법

제44조(의약품 판매)

① 약국 개설자(해당 약국에 근무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를 포함한다. 제47조, 제48조 및 제50조에서도 같다)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 다만, 의약품의 품목허가를 받은 자 또는 수입자가 그 제조 또는 수입한 의약품을 이 법에 따라 의약품을 제조 또는 판매할 수 있는 자에게 판매하는 경우와 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의 학생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의약품을 취득할 수 있다.

1. 제91조에 따라 설립된 한국희귀의약품센터

1의 2. 제44조의2에 따라 등록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제44조의2제1항에 따른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는 경우만 해당한다)

2. 제45조에 따라 허가를 받은 한약업사 및 의약품 도매상

- 약사법 시행령

제25조(한약업사 시험) 법 제45조제3항에 따른 한약업사의 시험은 한약 취급에 관한 필요한 지식과 그 실무상의 기능에 관하여 시·도지사가 수행한다.

제26조(응시 자격) 한약업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는 고등학교 이상의 학교를 졸업한 자 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이와 같은 수준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한 자로서 5년 이상 한의원이나 한약업소에서 한약취급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