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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최씨는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뒤 전국경제인연합을 압박해 대기업으로부터 800억원대 자금을 출연받아 이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 사진=김창현기자 |
"(전략)…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자금집행, 지급보증 및 업무무관계약 등의 체결로 인한 회사자산의 유용가능성 등 부정에 의한 재무제표 왜곡표시와 관련된 부정위험 요소가 발견됐습니다. (후략)"
이는 2015년 사업연도 재무제표 감사결과 회계법인으로부터 지난 3월 감사보고서 의견거절 평가를 받은 현대페인트의 감사보고서 문구다. 현대페인트는 이번 의견거절을 이유로 현재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밟고 있다. 회사자원의 무단유출은 시장퇴출 사유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중하게 다뤄진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시가총액 300억원대의 소형종목인 현대페인트와 같은 데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개혁연대, 재벌닷컴 등에 따르면 최순실의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의 수는 53개사에 이르고 이 중 10억원 이상을 출연한 곳만 해도 23개사에 달한다. 출연금 규모가 큰 기업 리스트에는 현대차,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삼성생명, 포스코 등 한국증시를 대표하는 종목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들 기업들은 적절한 의사결정 절차도 없이 무단으로 내부자원을 인출해 외부로 갖다 바쳤다는 의혹을 받는다. 심지어 영업악화로 수천억원대 적자에 시달린 기업들도 '삥'을 뜯겼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며 일각에서는 "일개 무당이 최고권력을 등에 업고 기업들로부터 '삥'을 뜯는 현실이 21세기 한국 자본시장의 민낯"이라는 한탄도 나온다.
형사법상 이번 출연에 참여한 기업들의 행위는 업무상 횡령·배임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타 주주나 이들의 위임을 받은 기구의 승인절차 없이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외부로 유출한 기업들에 대한 주주들의 민사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영역을 넘어서서 국가지배구조 자체가 무당과 대통령 측근들에게 휘둘린 정황도 시간이 갈수록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국가지배구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건실한 기업지배구조도 요원할 뿐"이라며 "국가가 나서서 기업에게서 돈을 갈취하는데 어느 투자자가 그 나라 기업에 투자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가뜩이나 부정적 평가를 받아왔던 한국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을 더 키웠다는 평가다. 신뢰상실이 초래할 악순환의 고리는 크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투표불참 등으로 표출되듯 시장에 대한 신뢰상실은 투자자 이탈을 초래한다. 발달된 시장에서 싼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을 기업들은 같은 자금을 조달하더라도 보다 높은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국민들의 허탈감을 심화시킨 반면 국정시스템 전반에 대한 반성과 개혁을 견인하는 이슈가 됐듯 이번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기업들의 사례는 재차 지배구조개선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 여부는 시장참가자들이 이번 문제를 흐지부지 덮지 않고 얼마나 끈질기게 문제의식을 유지할 것인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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