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인의 양심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고 형사처벌로 제한할 수 없다. 군 면제 사유가 다양한데 양심적 병역거부도 포함된다. 선진국 사례를 볼 때 현실적 대책(대체복무제)이 있는데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떳떳하게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공동체를 위해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2016년10월18일, 광주지법 형사항소3부)

"피고인들의 병역 거부는 병역법의 정당한 사유에 의한 병역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체복무제도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한다."(2016년11월2일, 수원지법 형사항소4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결이 법원마다 엇갈려 나오고 있다. 지난달 18일 광주지법은 항소심으로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지난 2일 수원지법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개인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법 제88조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한 때는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병무청에 따르면 2006년 이후 10년간 5723명이 종교 등 개인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는데, 이중 5215명이 처벌을 받았다. '병역의 의무'를 이유로 매년 500~600여명의 청년들이 전과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징병제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있다. 지난 2013년 출간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서 진석용 대전대 교수가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83개국이 징병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이중 31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외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종교,도덕,윤리,인도주의 등에서 발생하는 신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최초로 명문화 한 독일은 헌법에 '자신의 양심에 반해 무장전투근무를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해놨다. 여기서 '양심'은 종교적 이유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인도주의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발생하는 심오한 신념 또는 양심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교적 이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군사 대결을 거부하고 전쟁을 대비하는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개인적 신념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인정할지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다. 덴마크나 독일,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등은 어떤 이유라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대만 등은 종교적 사유만 인정한다.

2010년 기준/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양심'의 '진정성' 어떻게 판단할까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대체복무제 시행을 기반으로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나라마다 위원회 등의 심사를 거쳐 '양심의 진정성'을 판단해 결정을 내린다. 진석용 교수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국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신청할 경우 대부분 인정해주더라도, 신청자에게 폭력 전과나 무기소지 경험 등이 있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스는 대체복무를 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수와 군장교, 정신과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전과기록이 있거나, 무기소지를 신청한 기록, 전과기록 등 결격사유가 있으면 거절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군 복무한 경력이 있다면 역시 결격 사유다.

대만은 종교적 이유만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2년 이상 해당 종교에 속해있다는 증명서와 서약서 등을 대체복무 심의위원회에 제출하고, 면접에는 소속 종교 책임자가 증인으로 출석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라는 것은 증명해야 한다.

러시아 역시 심사를 거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한다. 대체복무를 원하는 지원자는 사유서와 계획서 등을 제출하고, 위원회 면담을 거쳐 대체복무 여부가 결정된다.

우크라이나는 교리상 무기소지를 금지하는 것으로 공식적으로 등록된 종교교파 신자들만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소집영장을 받고 6개월 이내에 정부가 인정한 종교 책임자가 서명한 서류를 대체복무위원회에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허가를 해준다.

노르웨이는 '핵무기 사용 반대'를 이유로 한 병역거부도 대체복무 사유로 인정을 해 준다. 신청을 하면 대부분 인정해주지만, 중범죄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역시 신청서를 제출하면 자동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해주지만, 범죄 경력이나 총기소지 자격증을 가지고 있을 경우 신청을 거절했다.

아르메니아 "현역 24개월, 대체복무 42개월"

대체복무와 현역복무의 가장 큰 차이는 '기간'이다. 대부분 나라들은 대체복무를 현역복무보다 오래 하도록 하고 있는데, 최대 두 배까지 차이가 난다. 아르메니아의 경우 현역복무 기간은 24개월이지만, 대체복무를 선택할 경우 42개월 복무해야 한다.

지난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인정한 아르메니아는 현역과 대체복무자 간 복무기간 차이가 가장 크다. 대체복무를 하기 위해서는 공화국징병위원회에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대체복무자는 정부가 정한 복장을 입고 정신병원이나 고아원, 진료소 등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러시아 역시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보다 두 배 길다. 현역 복무 기간은 12개월이지만, 대체복무 기간은 24개월이다. 대체복무를 어디서 할 지는 정부가 지정을 해 주는데, 교도소나, 건설현장, 의료·복지기관 등에 주로 배치한다.

우크라이나는 현역복무 기간은 18개월이지만, 대체복무 기간은 27개월이다. 대부분 임금이 낮고 열악한 근로 조건으로 거리청소부나 건설노동자 등으로 고용되는데 이에 대해 대체복무위원회는 "신청자 신념의 진정성을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복무조건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리스의 현역복무 기간은 12개월이지만, 대체복무 기간은 23개월로 약 두배 가량 더 근무해야 한다. 대체복무는 주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공공영역에서 수행하는데, 만약 대체복무조차 거부하면 최고 6개월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스위스 "군 면제 받으면 국방비 납부…국민투표로 대체복무제 허용"

스위스는 신체적인 이유 등으로 법적으로 복무 면제를 받았다면 50세까지 국방비를 납부해야 한다. 국방비는 과세대상 수입의 2%에 달하는데, 만약 이를 내지 않으면 1~10일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일반 군사 훈련 기간이 21주인데 비해 대체복무를 선택하면 1.5배에 달하는 390일을 근무해야 한다. 근무 분야는 사회복지, 보건, 환경 등 공적 영역이고, 전쟁 등 비상상황에서는 군대 내 비무장 분야로 소집될 수 있다. 스위스의 경우 90년대 초까지는 매년 약 360여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징역을 살았지만, 국민투표에서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서 지금의 제도가 자리잡았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노르웨이 역시 복무 기간에서는 차이가 난다. 현역은 6~12개월간 복무를 하면 되지만, 대체복무를 선택하면 13개월간 복무해야 한다. 대체복무는 공공기관과 시민단체 등에서 이뤄진다. 군복무와 대체복무를 모두 거부한다면 벌금형과 3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기간이 같은 곳도 있다. 덴마크의 대체복무 기간은 4개월로 현역과 같다. 대체복무는 주로 병원과 사회사업, 문화기관 등 정부기구, 평화·환경 관련 단체에서 수행되는데 이 모든 종류의 복무를 거부할 경우 4개월간 징역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복무 거부자들은 대부분 집행유예 처벌을 받는데, 이 기간동안 최대 240시간의 지역 봉사를 해야 한다.

독일은 현역과 대체복무 기간은 9개월로 같다. 대체복무자들은 주로 병원이나 장애인시설 등 사회복지 또는 봉사단체에서 근무한다. 해외에서 11개월간 환경활동이나 사회봉사를 했다면 역시 대체복무를 한 것으로 간주된다.

한국형 대체복무제 가능할까

국내에서도 지난 2002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이 '대체복무를 통한 양심 실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병역법 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것을 시작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 역시 2007년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 제도는 어떤 방법으로든 개선돼야 한다'며 한국형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국방부는 '사회복무제도 중 하나의 복무 분야'로 대체복무 허용을 검토했다.

국방부는 24시간 근접보호가 필요한 치매노인이나 중증 장애인 수발 등 난이도가 높은 복무 분야를 선정해, 출퇴근 없이 합숙하며 현역병의 두 배 수준의 기간으로 복무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하지만 2008년 "여론조사 결과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국방부 결정 후 8년이 지난 올해 이뤄진 설문조사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 여론이 높게 나타났다. 지난 6월 서울변호사회가 회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1297명 중 859명(66.2%)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대체복무 허용 문제에 대한 판단을 앞두고 있다. 2004년과 2011년에 이어 세번째 판단이다. 한국형 대체복무제는 탄생할 수 있을까.

*참고: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경인문화사 펴냄)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입영거부자 사회복무체계 편입방안 연구(진석용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