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은 비단 대학뿐 아니라 각계각층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책임총리임명, 거국중립내각구성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으나 이미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그 대표자가 국민을 대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직선거법상 선거권제한 사유가 있는 자를 제외하면, 만 19세 이상의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선거권을 갖는다. 

대통령 역시 투표를 통해 선출되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의 원수로서 그 책임과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동안 국민은 자신의 개인적 지지와는 별개로 그의 정책결정과 제도를 존중하고 따른다.

위와 같은 절차는 굳이 국가조직론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우리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자, 수많은 시민들이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낸 그 자체로서 우리의 역사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그와의 친분을 매개로 권력을 사유화한 이들로 인해 상식이 통하지 않고 역사 앞에 부끄러운 나라가 돼버렸다.

국민들은 지난 3년 8개월간 국가의 정책결정에 선출되지 않은 이들이 개입되었다는 사실과 국가의 권력이 그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적재적소에 이용되고 남용된 보도를 보며 분노와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와 허탈함 속에서도 사태를 방관하지 않고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며 자발적으로 촛불을 밝혀 모이는 까닭은, 우리 손으로 선출한 권력에 의해 통치되지 않은 비민주적인 구조에 대한 절규이자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로서 이를 수호하는 시민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대한민국과 부패한 기득권에 대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다른 이에게 내맡긴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에 대해, 국가의 권력을 사익의 수단으로 마구잡이로 휘두른 그들의 오만함에 대해, 보수와 진보를 떠나 우리는 또 한번 민주시민으로서 스스로 투사가 되어 온몸으로 그들과 부딪히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민들이 이룩해낸 역사이자 그 어떤 독재의 핍박 속에서도 일궈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었다. 단합된 힘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발전시켰듯 오늘날의 위기도 조직된 시민의 힘으로 이겨내리라 확신한다.

정부와 여당은 현재 상황을 왜곡 없이 받아들여 더 이상 민주주의를 호도하는 일을 즉각 멈춰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의 총체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하나 된 소리를 경청하고 진정 국민들이 바라는 요구에 걸맞은 결단과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에게 천심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민심에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