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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제공=이미지투데이 |
변호사 수 기준 국내 1~4위 로펌이 한 사건에서 원고·피고의 대리인으로 맞붙은 소송의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소송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사건의 성격상 한국을 대표하는 빅4 로펌이 총동원돼 법리싸움을 펼쳤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4일 사모펀드의 무한책임사원(GP)인 A증권사, B증권사 등 2개사가 안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를 믿고 비상장사 C사에 투자했다가 C사의 부도 및 회생절차로 입은 손해를 배상해 달라며 제기한 항소심에서 원고승소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고 28일 밝혔다.
지난해 5월에 나온 1심 판결에서도 원고들은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손해배상액 산정이 과도하게 적게 산정됐다며 항소했다. 1심에서 A,B증권사는 총 250억원의 손실 중 각각 20억원의 손해배상액이 인정됐으나 이번 항소를 통해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이 각각 41억원으로 높아졌다.
변호사 수 기준으로 각각 2위, 4위인 법무법인 광장과 세종이 원고들을, 1위와 3위인 김앤장법률사무소와 태평양이 피고를 각각 대리했다. 1심에서는 광장과 김앤장이 맞붙었다가 사실상 김앤장 측이 승리했다. A,B증권사가 각각 250억원씩의 손해를 입었음에도 법원이 판단한 배상금은 단 20억원씩에 그쳤기 때문이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종과 태평양이 추가로 소송에 합류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B증권사가 받을 배상금을 종전 20억원에서 41억원으로 대폭 올려잡았다. A, B증권사가 애초 투자한 금액에 비해서는 16%에 불과한 금액이지만 1심판결에서 인정된 손해배상액에 비해서는 2배 이상 높아졌다.
◇공동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책임의 성격 및 배분방식이 쟁점
이번 사건의 핵심은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자행해 투자자들을 현혹시킨 C사 뿐 아니라 재무제표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그리고 분식회계 기업과 회계법인이 투자자들에게 져야 할 책임의 성격은 무엇인지 여부였다.
2011년 4월 A,B증권사가 무한책임사원으로 참여한 2개의 PEF(사모펀드)는 C사의 상환전환우선주 취득을 위해 각각 250억원씩 총 500억원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C사는 분식회계를 거쳐 작성된 재무제표와 감사보고서를 통해 A,B증권사를 대상으로 투자유치에 나섰다. 이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회계법인이 바로 안진이었다.
C사는 2011년 3월 투자유치 과정에서 당해연도 순이익이 393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투자를 받은지 불과 5개월이 지난 같은 해 9월에는 당기순손실이 895억원에 이른다고 A,B증권사에 통보했다. C사는 이듬해 3월 부도처리됐고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투자금 전액을 날리게 된 A,B증권사는 안진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B증권사가 C사의 예금에 대해 설정한 질권을 통해 투자금 일부를 회수했고 △회생절차를 통해 확정된 회생채권을 통해 A,B증권사가 C사로부터 받을 몫이 각각 125억원씩에 달한다는 등 이유로 A,B증권사가 입은 손해를 250억원씩이 아니라 100억원씩으로 제한했다. 또 A,B증권사의 PEF는 전문투자자라는 등 이유로 안진회계법인의 손해배상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피해자 보호에 더 유리한 부진정 연대채무 방식이란
하지만 2심 재판부는 C사의 분식회계와 안진회계법인의 부실감사는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봤다. A,B증권사가 입은 손실에 대한 배상책임은 C사와 안진회계법인이 연대해서 부담하되 그 성격은 '부진정 연대책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들이 C사를 상대로 갖게 된 각 회생채권 125억원 상당에 대해서는 원고들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손해액을 산정할 때 이를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원고들에 대한 C사의 각 회생채무와 피고의 손해배상채무는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부담하는 부진정 연대채무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원고들이 C사로부터 각 회생채무를 변제받았는지와 무관하게 각 회생채권의 존재만으로 그 채권액 상당을 원고들의 손해액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부진정 연대책임은 일반적인 연대책임에 비해 피해자를 보다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 일반적인 연대책임이라면 안진회계법인이 져야 할 책임은 1심 재판부의 판단대로 △C사의 예금에 대한 질권행사를 통해 A,B증권사가 회수한 금액과 △회생계획 인가로 확정된 회생채권 부분이 제외돼야 하지만 부진정 연대책임으로 간주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안진회계법인과 C사 모두 A,B사가 입은 손해액 전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안진회계법인이나 C사 중 자기책임보다 더 많은 변제를 한 경우에는 상대방을 대상으로 구상권을 청구할 수는 있다. 물론 이는 A,B증권사에 대한 손해배상과는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2심 재판부는 A,B증권사가 입은 손해액이 215억3300여만원에 달한다고 봤다. 1심 재판부가 산정한 손해액(100억원)의 2배 수준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원고들은 다른 회계법인에 별도의 재무실사를 요청해 실사보고서를 제출받고 C사의 경영진으로부터 경영설명과 관련한 회계자료를 받아보는 등 전적으로 안진의 감사보고서에만 의존해 투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안진이 C사의 대표이사, 임직원 등의 조직적 공모와 자료조작으로 분식회계 사실을 쉽게 적발할 수는 없었던 점, 원고가 일반투자자에 비해 고도의 판단능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자체적으로도 C사의 재무상태, 투자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책임을 제한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A,B증권사가 받을 수 있는 금액도 별도의 책임제한 비율 산정 없이 41억원씩으로 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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