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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저는 지금까지 약 30여년을 법률가로 살아왔습니다. 법률가인 이상 당연히 상속에 대해 공부한 바 있고 기본적인 관심을 갖고 지내왔지만, 남보다 특별히 더 관심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법관으로서 가끔 상속 사건을 처리하면서 그때마다 필요한 지식을 재점검하는 정도였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해 서울가정법원에서 상속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장이 되었습니다. 상속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재판부를 맡아보니 이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속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거의 매일을 상속에 대해 생각하고, 1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상속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건을 심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속이 개시된 사건이었습니다. 원래 부인이 돌아가시고 연로하시게 된 뒤 재혼을 한 경우였습니다. 두 분이 나이가 들어 재혼하셨으므로 두 분 사이에 자녀는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상속분쟁이 늘 그러하듯이, 원래 부인 소생의 자식들과 계모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자식들도 이미 중년을 훌쩍 넘긴 점잖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사후에 이런 분쟁을 예상했던지, 미리 값이 나가는 아파트는 부인에게 물려준 상태였습니다.
법정에서 하나씩 확인해가며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데,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던 청구인(아들)이 길게 이야기를 해나가더니, 약간 평정이 흔들렸는지 다소 불안정한 말을 하다가는, 상대방, 즉, 계모에게 '이 여자(가 들어온 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고 나서 자신도 쓸데없는 표현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금세 평정을 되찾았고, 상대방인 부인도 점잖은 분이었던 터라 이를 두고 법정에서 얼굴을 붉히고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분쟁이 격렬하더라도 남들 보는 앞에서 새어머니를 '이 여자'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그 아들되는 분도 그 정도 사리를 모르는 분은 아니었으나, 순간적인 흥분에 과한 말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법정은 일종의 싸움의 장이므로 그보다 더 한 말도 많이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새어머니를 남들 보는 앞에서 '이 여자'라고 부르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도 30여년을 법률가로 지내면서 그때 딱 한 번 보았을 뿐입니다.
그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상속을 둘러싸고 분쟁이 심해지면 감정이 격화되어 이런 일이 생길수도 있구나'하는 점을 실감하였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이미 아버지가 값 나가는 아파트를 물려줬기때문에, 새어머니가 남은 재산에 욕심을 내서는 안되는 경우였습니다. 법률가의 시각에서 보면 싸울 이유가 없는 사건이었는데, 그 부인은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언가 더 얻어보려는 생각에서였는지, 의붓자식들과 합의를 해주지 않아 그 자식들이 소송을 제기한 경우였습니다.
그 경험을 계기로, 알면서도 우기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몰라서 불필요한 상속분쟁을 하는 일은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건처리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되는 대로 상속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여기에 적어보려는 내용도 결국 그때 결심한 것을 실천하는 일부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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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웅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구성원 변호사로 가업승계-가사소송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지난 2011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태평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가족법학회, 민사소송법학회, 신탁포럼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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