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모임' 회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징벌적 배상법' 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 김현 변호사(법무법인 세창), 세번째 박영선 의원, 네번째 김정욱 변호사(법무법인 폴라리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같은 대기업의 반사회적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징벌적 배상제도를 전면 도입하는 내용의 '징벌적 배상법' 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고 밝혔다. 2016.6.16/사진=뉴스1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옥시 한국 본사 앞에서 '옥시 최종배상안 발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이날 참가자들은 "옥시는 최종배상안을 철회하고 국회와 검찰에서 진행하는 조사활동과 수사에 적극적이고 성실히 임하라"고 밝혔다. 2016.8.9/사진=뉴스1

소비자 생명과 신체에 피해를 입힌 제품을 만든 기업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연내 도입될 것이라는 소식에 법조계가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고의적으로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힐 경우 최대 3배의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연내 도입하겠다고 5일 밝혔다. 공정위는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이런 내용의 2017년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고의로 소비자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혔을 때는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또 피해자가 제품 결함 등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도 줄어들게 될 예정이다.

◇변호사업계, 꾸준한 도입 요구 관철 '환영'

수년전부터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시민단체와 변호사업계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고 그 논의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셈이다. 변호사들은 특히 법률시장 확대를 기대하며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도입을 반기고 있다.

김현 변호사(법무법인 세창)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은 바람직하고 사회 정의에 부합되는 일"이라며 "소비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악덕 기업을 징계해서 추후 동일한 사고를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김현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 모임(징손모)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찬희 변호사(법무법인 정률)은 "경제적 강자의 횡포를 제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 도입을 환영한다"며 "그간 동료 변호사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한국법조인협회(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들의 모임) 회장인 김정욱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한 입법 운동 서명을 받는 등 노력해왔는데 성과가 이제야 나타난 것 같다"며 "실제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사건은 대부분 기업과 개인 소비자간의 소송이므로 피해 및 고의과실 입증이 매우 어려운데 이번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이 제도에 입증 책임의 완화가 포함된다고 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나아가 집단소송제와 디스커버리제도 등 징벌적 손해배상과 연관된 민생3법의 도입도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실질적 피해보상이 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한 사람 또는 일부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 소송 없이 그 판결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이번에 공정위가 연내 도입을 하겠다고 밝힌 '최대 3배'의 손해배상액은 박영선 의원이 지난해 6월 징손모와 함께 발의한 법안과 같은 수준으로 국내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나온 것이다. 

또 '디스커버리제도'란 본안 재판 전 증거조사 절차로 미국과 영국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서로 미리 공개한다. 개인이 의료기관이나 대기업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때 증거를 미리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옥시사태로 야권서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 경쟁적으로 내놓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지난해 각각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징벌적 배상법' 제정안 등을 내놓기도 했다. 가습기살균기 논란이 정치권 주요이슈가 되면서 경쟁적으로 개선책 마련에 나선 바 있다. 

법안 가운데에는 손해액의 최대 12배 범위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공정위는 국내 기업 현실을 반영해 최대 3배로 한정한 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는 별도로 표창원 더민주 의원은 기업의 잘못으로 인명피해가 난 경우에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인명피해 야기 기업 처벌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매번 계획상으론 도입한다던 공정위…이번엔 다를까

일각에선 최근 몇년간 공정위가 입버릇처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업무계획에만 내놓고 실제로는 계속 미뤄 온 전력이 있어 실제 도입될 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공정위는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 시절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와 집단소송제 도입을 골자로 한 소비자피해구제방안을 보고했으나 정부출범 5년차를 맞이한 현재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한편 공정위가 업무계획에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여러번 포함시키면서도 실제 국회 입법과정에서는 기업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한 바 있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번 업무계획이 현실화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최순실 게이트로 행정부와 재벌 대기업에 대한 국민 반감이 높아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을 고려해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기도 한다. 공정위는 최근까지도 법체계상 어려움, 남소와 배상액 증가로 인한 기업활동 위축 우려 등을 근거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대해 신중검토 의견을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