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왕실장', '박근혜의 여자'로 불리며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구속됐다. 정권 최고 실세들도 '최순실 게이트'를 피해갈 수 없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 명단)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들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1일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꾸라지'로 전락해 버린 '왕실장'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정권 최고 실세로 꼽혔다. '왕실장',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이 탓에 최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몰랐을 리 없다는 추측이 큰 힘을 얻기도 했고, 자신이 직접 국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심을 사 왔다.

경남 거제 출신인 김 전 실장은 1939년 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했다. 대학 3학년 때 고등고시 사법과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이후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거쳐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모두 지냈다.

김 전 실장은 정치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5∼17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의 특보단장, 국회 법사위원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등을 거쳤다.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대공수사부장,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지냈고 유신헌법 제정에도 핵심 역할을 했다. 김 전 실장은 2006녀부터 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고, 2012년 대선에서 박 당시 후보의 자문그룹 '7인회' 멤버로 활동했다. 2013년 8월부터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뒤부터 김 전 실장의 추락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담화에서 "최씨에게서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했는데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던 김 전 실장이 최씨를 모른다고 발뺌한 탓이다. 그는 국회 청문회에서도 "최씨를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근혜의 여자'·'신데렐라'…현직 장관 첫 구속 '불명예'

조 장관 역시 현 정권에서 두 차례 장관직을 지내고 정무수석을 역임하는 등 비단길을 걸어왔다. 이 탓에 '박근혜의 여자', '박근혜 정부의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조 장관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나경원 의원에 이어 대변인직을 맡게 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첫 여성 변호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

조 장관은 2012년 대선에서 박 당시 후보의 수행 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조 장관은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 최초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까지 지냈다. 지난해 총선 때 서울 서초갑 지역에 새누리당 공천 신청을 했다가 이혜훈 의원에 밀린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김 전 실장과 마찬가지로 조 장관 역시 '최순실 게이트'를 피하지 못했다.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으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할 때마다 모르쇠로 일관했던 조 장관은 위원들의 집중 추궁에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는 애매한 답변을 해 큰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는 결국 현직 장관 신분을 유치한 채 구속되는 첫번째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