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위 의혹을 수사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가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1패를 당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삼성에 대한 수사 의지를 확고히 했다. 다른 대기업들 수사는 "삼성을 마무리한 후 들어가겠다"며 삼성이 여전히 '최우선' 수사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삼성 수뇌부 등 의혹 당사자들에게 이번 주 재소환 가능성을 예고했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대변인은 23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삼성 수사를 마무리하고 다른 대기업 수사를 할 예정"이라며 "삼성과 관련된 이들이 소환될 가능성이 높고 (다른) 대기업은 이후 결정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특검은 이날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과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를 불러 조사했다. 이 특검보는 "삼성물산 합병 관련 조사를 위해 부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손해를 감수하고 합병에 찬성, 합병은 성사됐다. 합병이 성사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에 성공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주 전 대표는 당시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병 반대 의견을 냈다. 주 전 대표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합병 반대 의견을 내고 당시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사장)에게 '장충기 삼성 사장에게 불평을 들었다'며 부정적인 부고서를 쓰지 말라는 압박과 부당한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주 전 대표는 임기를 6개월 가량 남기고 연임 불가 통보를 받아 논란이 인 바 있다.

특검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국민연금 측에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가 사실상 소유한 미르·K재단,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지원,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소유한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 등에 430억원에 이르는 지원을 한 배경에 삼성물산 합병이 있다는 것이 특검이 그린 그림이다.

문제는 법원은 최씨와 이 부회장, 박 대통령 사이 '대가성'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는 점이다. 특히 뇌물수수자에 대한 수사 부족이 특검의 발목을 잡았다. 이 대변인은 "(영장에) 뇌물 수수자 조사가 안 됐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었다"며 "이 부회장 영장 기각 사유로 법원이 적시한 부분에 따라 관련 조사 하고 있고, 조사가 끝나야 영장 재청구 여부 등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박 대통령을 대면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검은 최씨에게 눈을 돌렸다. 실제 돈을 받은 인물이 최씨인 만큼 최씨와 박 대통령 사이 연결고리만 찾으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은 최씨에 대한 수사가 절실하지만, 최씨는 거듭 특검 소환을 거부하고 있다. 특검은 지금까지 총 일곱 차례 최씨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최씨는 지난달 24일 한 차례 특검에 출석한 이후 건강상의 이유, 정신적 충격 등을 들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지막에는 특검의 강압 조사를 이유로 불출석을 통보했다.

특검은 결국 지난 22일 최씨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당초 특검은 최씨에게 뇌물수수 공범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를 근거로 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이 특검보는 "체포영장은 사건 혐의별로 청구할 수 있고 현 수사팀 상황상 이대 학사·비리 수사가 가장 빠르고 종결 가능성이 있어 이와 관련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특검이 발부받은 체포영장으로는 최씨를 체포하더라도 이대 관련 수사만 할 수 있다. 만약 다른 혐의를 수사하려면, 관련 혐의에 대한 체포영장을 다시 받아야 한다. 뇌물죄 수사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특검이 체포영장 청구 사유를 바꾼 배경에 최씨에 대한 뇌물죄 수사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검 스스로도 최씨에 대한 뇌물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 특검보는 그러나 "최순실씨가 조사에 응하지 않더라도 절차만 갖춰지면 이와 관련된 부분은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무방해) 체포영장을 집행해서 조사하고, 이후 다른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할지 구속영장을 청구할지는 조사 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특검은 이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구속하면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 명단) 수사 굳히기에 나섰다.

특검은 이날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유 장관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폭로하고, 블랙리스트 작성의 최종 지시자로 박 대통령을 지목한 바 있다.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고, 이를 주도한 인물은 김 전 실장"이라며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블랙리스트 실행) 하시면 안된다는 말씀을 드린 적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만나 이같이 말하고 며칠 후 유 전 장관은 면직 처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