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최근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 배우자가 가출 등으로 행방불명이 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 외국인 배우자를 상대로 한 혼인무효 소송이나 이혼 소송은 통상 서울가정법원이 심리해 왔다.

그러나 법원은 최근 이 같은 소송들의 관할이 무조건 서울가정법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외국인 배우자가 가출해 소재불명이 된 경우 반드시 서울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판결이란 평가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수석부장판사 이은애)는 한국 국적의 A씨(40)가 베트남 국적 B씨(23·여)를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소송에 대해 사건의 관할이 서울가정법원에 있음을 전제로 판단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대전가정법원에 이송했다고 26일 밝혔다.

그간 A씨가 제기한 것과 같은 종류의 소송이 서울에서 진행된 것은 현행 가사소송법 제13조 2항 때문이었다. 해당 조항은 당사자 또는 관계인의 주소 등에 따라 관할이 정해지는 경우 그 주소가 국내에 없거나 이를 알 수 없을 때 대법원이 있는 곳(서울)의 가정법원이 관할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소재불명인 외국인 배우자가 국내에서 일정한 생활의 근거를 가졌었다면 형사소송법 제22조 2호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항은 부부가 마지막으로 같은 주소지를 가졌던 가정법원의 관할 구역 내에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현재도 거주하고 있을 때 그 가정법원이 재판을 관할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A씨가 2015년 8월31일 혼인신고를 마치고 같은해 11월부터 대전에서 B씨와 생활을 해온 점, A씨가 같은해 12월 B씨의 가출 이후에도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외국인 배우자와 혼인해 지방에서 함께 주소지를 가지고 생활하다가 외국인 배우자의 가출로 소재불명이 된 경우가 많다"며 "이 때 상대방 배우자가 그 주소지에 여전히 거주하고 있다면 혼인무효 또는 이혼 소송은 그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에 제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반드시 서울가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을 계기가 되고, 관할 가정법원에서 소송절차를 진행할 수 있으므로 국민의 편의 관점에서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A씨는 B씨가 가출하자 서울가정법원에 혼인무효 소송과 이혼 소송을 내 1심에서 이혼만 인정받았다. A씨는 이후 혼인무효가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이송한 만큼 A씨는 대전에서 다시 1심부터 소송을 진행해야 할 처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