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 가운데에서 시신이 떠올랐다. 시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줄 어떤 소지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발견된 것은 말 그대로 시신 뿐. 그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사고를 당한걸까.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은 아닐까. 말 없는 시신이 품고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시신은 말이 없지만 해양 생물들은 진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바다에 떠오른 익사체…해양생물은 알고 있다
대검찰청에서 지난 18일 '생물자원의 빅데이터 분석과 과학수사 활용'을 주제로 '제7회 한국 법생물 연구회'가 열렸다. 이날 해양경비안전연구센터의 이한성 박사는 해양 생물들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익사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익사체의 피부와 내장기관에서 발견된 해양생물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익사체가 물에 빠진 지역은 어디인지, 어떤 경로를 거쳐 발견됐는지, 익사한지 얼마나 됐는지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육지에서 곤충을 이용해 시신의 사망 시각과 장소를 추정해낸다면, 해양에서는 해양생물을 이용해 이를 알아내겠다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법곤충학'의 '바다 버전'인 셈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에는 각종 곤충이 모여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파리다. 파리는 사람이 죽으면 수 분 안에 날아와 시신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알을 낳는다. 알에서는 구더기가 나오고 구더기는 세 번의 탈피 과정을 거치며 모습을 변한다. 이 성장 과정 등을 통해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송장벌래 등 딱정벌래 종류나 개미, 말벌 같은 곤충들이 모여든다. 장소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만 사는 곤충이 발견되기도 한다.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에 따라 다른 곳에서 사망해 장소가 옮겨진 것은 아닌지 등을 추정할 수 있다.
◇해양변사체 3757건 중 644건이 '사인불명·신원불상'
하지만 당연하게도 익사체에는 적용할 수 없다. '물은 흐른다'는 특성 때문에 어디서 물에 빠졌는지조차 추정이 힘들다. 해양경비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3757건의 해양변사체가 발견됐지만, 199건은 사망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445건은 신원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전체 해양변사체의 17%에 이른다.
해양경비안전센터는 경기도 평택항과 전라북도 군산의 비응항, 한강과 인천항 등 4 곳에서 돼지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해양생물 유전자를 통한 익사체의 증거자료 확보 가능성을 확인했다. 실험결과 돼지 사체에서 발견되는 생물의 유전자 종류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였다. 강과 바다, 같은 바다라도 평택항과 비응항, 인천항에서 발견되는 생물 유전자는 달랐다. 서해 바다 어딘가에서 발견된 사체라도 장기에서 한강에 사는 생물 유전자가 발견됐다면 이 사체는 한강을 떠내려와 서해에 도달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기와 피부에서는 시간대별로 다른 생물 유전자가 발견됐다. 1시간만에 건져올린 돼지의 경우 위에서만 발견된 생물의 유전자가 3일 뒤에는 신장과 간, 피부에서도 발견됐다. 이 생물 유전자가 사체 어느 부위에서 발견됐는지에 따라 물에 빠진 시간을 추정해낼 수 있는 것. 수중 착생생물 군집 정보를 활용하면 더 정확한 시간 추정이 가능하다.
이 박사는 "굴이나 조개류 등 물체에 붙어 자라는 생물들의 성장과 번식을 보면 시간 추정도 가능하다"며 "실제 해외에서는 조개류를 이용해 사체가 얼마나 물에 빠져있었는지 시간을 추정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착생생물 군집을 분석하면 강이나 바다에서 발견된 증거물이 언제 버려졌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다.
이 박사는 또 "어떤 지역에서는 바닷물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소나무 유전자가 나와서 찾아보니 주변에 소나무 군락이 있었다. 해양 뿐 아니라 주변 생태계에 따라서도 지역별 특성을 보이는 것"이라며 "이같은 정보가 더 많이, 촘촘히 확보돼 데이터 지도가 완성되면 익사체 사망 시각부터 사건 장소, 이동 경로까지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양경비안전연구센터는 그동안 축적한 해양생물 DNA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올해 말쯤 공개할 예정이다.
◇DNA 정보 '신원확인' 넘어 '간접증거' 확보로 기술진화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축적이다. 이같이 방대한 양의 DNA 데이터 확보가 가능해진 것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검사(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술 덕분이다. NGS는 많은 유전자를 한 번에 대량으로 검사하는 새로운 유전자 해독 기술을 말한다. 과거에는 시료 안에 뒤섞인 DNA를 분석하려면 하나하나 분리해낸 후에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 유전자가 섞인 시료에서 각각의 DNA를 한번에 구분해낼 수 있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수백여종의 해양생물 DNA가 포함된 바닷물 시료에서 각 생물들의 DNA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그동안 DNA 정보는 사체의 신원파악에만 집중해왔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체 주위에 있는 생물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간접증거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며 "국내 생물에 대한 유전자 분석이 되면 수사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굉장히 높은 응용가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주변 생태계 유전자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의 과학수사과 관계자는 "미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중에서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했지만 차 안에서 피해자가 살해당한 지역에서만 사는 식물의 씨앗이 발견되면서 사건이 해결된 사례가 있었다"며 "지금까지 DNA 기술은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해 피해자나 범인을 특정하는데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방대한 생물 유전자 DB 등을 활용해 간접증거를 확보, 범인이 범인일 수밖에 없는 주변 정황 증거들을 확보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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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떠오른 익사체…해양생물은 알고 있다
대검찰청에서 지난 18일 '생물자원의 빅데이터 분석과 과학수사 활용'을 주제로 '제7회 한국 법생물 연구회'가 열렸다. 이날 해양경비안전연구센터의 이한성 박사는 해양 생물들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익사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익사체의 피부와 내장기관에서 발견된 해양생물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익사체가 물에 빠진 지역은 어디인지, 어떤 경로를 거쳐 발견됐는지, 익사한지 얼마나 됐는지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육지에서 곤충을 이용해 시신의 사망 시각과 장소를 추정해낸다면, 해양에서는 해양생물을 이용해 이를 알아내겠다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법곤충학'의 '바다 버전'인 셈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에는 각종 곤충이 모여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파리다. 파리는 사람이 죽으면 수 분 안에 날아와 시신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알을 낳는다. 알에서는 구더기가 나오고 구더기는 세 번의 탈피 과정을 거치며 모습을 변한다. 이 성장 과정 등을 통해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송장벌래 등 딱정벌래 종류나 개미, 말벌 같은 곤충들이 모여든다. 장소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만 사는 곤충이 발견되기도 한다.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에 따라 다른 곳에서 사망해 장소가 옮겨진 것은 아닌지 등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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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변사체 3757건 중 644건이 '사인불명·신원불상'
하지만 당연하게도 익사체에는 적용할 수 없다. '물은 흐른다'는 특성 때문에 어디서 물에 빠졌는지조차 추정이 힘들다. 해양경비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3757건의 해양변사체가 발견됐지만, 199건은 사망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445건은 신원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전체 해양변사체의 17%에 이른다.
해양경비안전센터는 경기도 평택항과 전라북도 군산의 비응항, 한강과 인천항 등 4 곳에서 돼지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해양생물 유전자를 통한 익사체의 증거자료 확보 가능성을 확인했다. 실험결과 돼지 사체에서 발견되는 생물의 유전자 종류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였다. 강과 바다, 같은 바다라도 평택항과 비응항, 인천항에서 발견되는 생물 유전자는 달랐다. 서해 바다 어딘가에서 발견된 사체라도 장기에서 한강에 사는 생물 유전자가 발견됐다면 이 사체는 한강을 떠내려와 서해에 도달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기와 피부에서는 시간대별로 다른 생물 유전자가 발견됐다. 1시간만에 건져올린 돼지의 경우 위에서만 발견된 생물의 유전자가 3일 뒤에는 신장과 간, 피부에서도 발견됐다. 이 생물 유전자가 사체 어느 부위에서 발견됐는지에 따라 물에 빠진 시간을 추정해낼 수 있는 것. 수중 착생생물 군집 정보를 활용하면 더 정확한 시간 추정이 가능하다.
이 박사는 "굴이나 조개류 등 물체에 붙어 자라는 생물들의 성장과 번식을 보면 시간 추정도 가능하다"며 "실제 해외에서는 조개류를 이용해 사체가 얼마나 물에 빠져있었는지 시간을 추정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착생생물 군집을 분석하면 강이나 바다에서 발견된 증거물이 언제 버려졌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다.
이 박사는 또 "어떤 지역에서는 바닷물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소나무 유전자가 나와서 찾아보니 주변에 소나무 군락이 있었다. 해양 뿐 아니라 주변 생태계에 따라서도 지역별 특성을 보이는 것"이라며 "이같은 정보가 더 많이, 촘촘히 확보돼 데이터 지도가 완성되면 익사체 사망 시각부터 사건 장소, 이동 경로까지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양경비안전연구센터는 그동안 축적한 해양생물 DNA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올해 말쯤 공개할 예정이다.
◇DNA 정보 '신원확인' 넘어 '간접증거' 확보로 기술진화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축적이다. 이같이 방대한 양의 DNA 데이터 확보가 가능해진 것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검사(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술 덕분이다. NGS는 많은 유전자를 한 번에 대량으로 검사하는 새로운 유전자 해독 기술을 말한다. 과거에는 시료 안에 뒤섞인 DNA를 분석하려면 하나하나 분리해낸 후에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 유전자가 섞인 시료에서 각각의 DNA를 한번에 구분해낼 수 있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수백여종의 해양생물 DNA가 포함된 바닷물 시료에서 각 생물들의 DNA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그동안 DNA 정보는 사체의 신원파악에만 집중해왔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체 주위에 있는 생물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간접증거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며 "국내 생물에 대한 유전자 분석이 되면 수사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굉장히 높은 응용가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주변 생태계 유전자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의 과학수사과 관계자는 "미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중에서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했지만 차 안에서 피해자가 살해당한 지역에서만 사는 식물의 씨앗이 발견되면서 사건이 해결된 사례가 있었다"며 "지금까지 DNA 기술은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해 피해자나 범인을 특정하는데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방대한 생물 유전자 DB 등을 활용해 간접증거를 확보, 범인이 범인일 수밖에 없는 주변 정황 증거들을 확보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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