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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서초]목격자는 말을 바꿨지만 DNA는 진실을 말했다

[the L]도둑맞은 수표 5장에 남은 108개의 흔적…그 안에 남겨진 범인의 'DNA'

편집자주모든 사건현장에서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갈수록 지능화되는 범죄에 범인이 남긴 흔적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요. 범행이 지능화되는 만큼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과학수사 기법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증거물이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증거물 수집, 분석 등이 필요합니다. 과학수사를 통해 해결한 사건을 짚어보며 어떤 기법이 활용됐는지 소개합니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아닌가…지금 보니 아닌 것도 같고…"

유일한 증거가 사라졌다. 이 사건을 풀어줄 유일한 열쇠는 목격자 진술이었다. 그 목격자가 진술을 바꿨다. 물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저 사람이 시켜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줬다'고 지목한 목격자 진술을 바탕으로 용의자를 잡아 구속 수사 중이었다. 목격자가 진술을 바꾸면서 유일한 증거가 사라졌다. 용의자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됐다. 쉽게 풀릴 줄 알았던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대문 대신 막대기 세 개를 걸쳐놓고 살 정도로 범죄라고는 없었다는 제주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공무원이 노령연금 준다고 해서 은행 가서 수표 바꿔다 줬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닷새 전 농협에서 100만원짜리 수표 5장을 찾아와 찬장 위에 올려둔 상자 밑에 뒀었다. 나흘간 집을 비우고 돌아와 돈을 찾아보니 돈이 없어져있었다. 집에 누가 들어온 흔적도 있었다. A씨는 경찰에 수표를 도둑맞았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수표 번호를 추적해 도난당한 수표가 다른 동네에 있는 농협에서 현금으로 교환된 것을 확인했다. 농협 앞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자 한 노파가 승용차를 타고 와서 수표를 교환한 뒤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경찰은 노파를 찾았다.

"아 수표? 집에 있는데 시청 공무원이라는 남자가 왔어. 노령연금을 주러 왔는데 돈이 모자르대. 50만원을 줘야하는데 30만원밖에 없다더라고. 대신 수표가 있는데 은행에 가서 수표를 바꿔주면 나머지 20만원을 주겠다고 해서 같이 은행에 갔지. 그 공무원 차를 타고 갔어. 100만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바꿔다 줬더니 20만원을 줘서 받았지. 집까지 바래다주는데 이상하게 큰길로 안가고 골목길을 돌아가대"

80대 노파는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노파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적 있는 전과자들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중 한 명을 지목했다.

"여기 이 남자네. 맞아 맞아."

남자를 찾았다. 남자의 휴대폰에서는 수표를 교환한 날짜에 80대 노파가 살고 있는 지역의 노인복지회관 등 지도를 검색한 기록이 발견됐다. 남자가 살고 있는 지역과는 동떨어진 곳으로 하필이면 사건이 발생한 날 이 동네에 남자가 올 연고는 없었다.

◇"저 아닌데요? 증거 있어요?"

"저 아닌데요? 다짜고짜 경찰이면 이래도 됩니까? 제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어요?"

증거가 없었다. CCTV에 찍힌 영상으로는 차량 번호도 확인이 안됐고, 승용차 색깔조차 제대로 구분이 안갔다. 영상에 찍힌 사람도 노파 뿐 남자는 없었다. 증거라고는 80대 노파의 진술 뿐. 노파의 진술을 근거로 구속영장을 받아 사건을 검찰에 넘겼지만, 수사가 계속되자 노파는 진술을 거둬들였다.

"보다보니 아닌 것 같은데…잘 모르겠어."

용의자는 풀려났다. 증거가 없었다. 그렇다고 80대 노파를 범인으로 보기는 무리였다. 노파를 차에 태워 수표를 바꿔간 사람을 찾아야했다. 경찰에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사건의 시작인 수표에 주목했다. 혹시 수표에 발견하지 못한 범인의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수표 5장에서 찾아낸 108개의 흔적…범인의 'DNA'는 단 한 개

검찰은 수표를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 DNA 감정을 의뢰했다. 수표에서 신원확인을 할만한 지문은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DNA는 검출될 수 있다는데 희망을 걸었다.

수표를 넘겨받은 대검 DNA 감정관은 5장의 수표에서 108개의 흔적을 찾아냈다. 과학수사 드라마를 보면 붓에 가루를 묻혀 지문을 찾아내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지문 검색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중 종이에 묻은 지문을 검출할 때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닌히드린 반응을 이용한 검사다. 닌히드린 용액이 땀과 각질세포 등에서 묻어난 아미노산과 단백질 등에 반응하는 성질을 이용해 지문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감정관은 찾아낸 지문에 DNA가 남아 있는지를 살폈다. 108개의 흔적 중에서 17개 부위에서 DNA 감정이 가능한 세포가 검출됐다. 이중 16개는 수표 주인의 것이었다. 마지막 한 개에서 남자의 DNA가 검출됐다. 108개 흔적 중 마지막 하나를 놓쳤다면 찾지 못했을지도 모를 DNA였다.

국내 수사기관은 지난 2010년부터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과자들의 DNA 정보는 데이터베이스(DB)로 관리 보관하고 있다. 또 미제사건 현장에서 증거로 발견한 DNA 정보도 보관한다. 이미 절도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 있던 용의자의 DNA 역시 DB에 저장돼있었다.

◇"유전자 검사 등 과학적 증거방법…합리적 근거 없으면 인정해야"

남자는 수표에서 나온 DNA가 핵심 증거가 돼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남자는 자신의 DNA가 수표에서 발견됐지만, DNA 감식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버텼다.

1심 법원은 "유전자 검사나 혈액형 검사 등 과학적 증거 방법은 오류 가능성이 없거나 적다고 인정되면 합리적 근거 없이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며 "수표들이 현금으로 교환된 이후에는 피고인(남자)이 수표를 만져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DNA 검출로) 그 전에 수표를 접촉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관계이고 금전 거래관계도 없는 사정을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에서 수표를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다른 설명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던 남자는 2심에서 결국 범행을 자백, 1년 4개월로 감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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