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리포트

염전에서 탈출한 그 남자…"이제 독립합니다"

[the L][Law&Life-세상의 빈틈]③3년간 '후견인-피후견인'…"자립 바탕을 만들어 준 시간"

편집자주톱니바퀴가 굴러가듯 정교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도 빈틈이 있습니다. 법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아 생긴 빈틈, 법끼리 부딪혀 생긴 모순이 만든 빈틈, 소수자라서 법이 없어서 생긴 빈틈,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소외된 곳에 서 있어서 생긴 빈틈, 세상이 변하면서 생긴 빈틈까지…우리가 모르는, 하지만 어느날 우리가 서있게 될 수 있는 빈틈을 찾아, 틈을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염전에서 탈출한 그 남자…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송남영 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실장이 50대 A씨를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목포행 KTX에서였다. A씨는 두 가지 소원을 말했다. 가족을 찾는 것과 내 휴대폰을 갖는 것. 목포에 도착해 함께 찾은 곳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송 실장은 A씨의 공공후견인이 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지난 201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일명 '염전 노예' 사건. 지적장애인과 노숙인들을 사고팔며 강제 노동을 시킨 업주들이 적발됐다. 당시 드러난 피해자만 370여명. A씨는 당시 구출된 370여명 중 한 명이었다.

2014년 초, 송 실장은 A씨의 공공후견인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후견인이 되기로 했다. 성년후견인은 법원이 정해준다. 성년후견인이 되기 위해서는 관련 교육을 이수했다는 증명 서류와 후견업무를 어떻게 할지를 보여줄 후견계획서 등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또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서에 가서 범죄경력증면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경력증명서와 가족증명서 등도 필요하다.

서류 제출 후 보름쯤 지나니 법원에서 후견심판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A씨 담당 법원은 광주지법 목포지원. 송 실장은 이날 심판을 받으러 가면서 A씨를 처음 만났다. 송 실장은 A씨에게 후견인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다. A씨는 7년 전 염전에 들어가면서 연락이 끊긴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갖고 싶다고 했다.

후견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후견인이 될 사람이 정말 후견인이 필요한 상황인지를 확인할 건강 진단서와, 피후견인이 후견인 선임을 원하는지 본인의 동의를 확인하는 것이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관리와 신상보호 등 광범위한 권한을 갖게 된다. 피후견인의 의사와 동의가 없다면 후견인을 선임할 수 없다.

만약 피후견인이 후견인 후보자가 마음에 안 들어 동의하지 않으면 후견인이 될 수 없다. 후견인이 할 수 있는 일들 역시 법원이 정해준다. 만약 후견인의 권한이 너무 크다고 피후견인이 생각한다면 이의 제기를 할 수도 있고, 후견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달라고 할 수 있다.

판사는 재판장 한쪽에 큰 스크린을 띄워 놓고 A씨 본인이 작성한 서류가 맞는지 확인하고 송 실장이 후견인이 되는 것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A씨는 "네"라고 답했고, 이주일 뒤 송 실장은 A씨의 공공후견인이 됐다.

송 실장은 먼저 A씨의 재산 목록부터 작성했다. 재산관리는 신상보호와 함께 후견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때문에 현재 재산이 얼마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후견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A씨의 재산은 간단했다. 염전주에게 받은 밀린 임금 4300만원. 당시 근로감독관은 최저임금을 적용해 A씨가 받지 못한 임금으로 7300만원을 책정했지만 염전주는 4300만원만 입금한 상태였다.

이제 A씨의 소원을 들어줄 차례. 송 실장은 A씨의 휴대폰을 만들러 통신사를 찾았지만 개통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휴대폰을 써본 적도 없던 A씨에게 180여만원의 체납 요금이 있었다. 전 염전주가 A씨 명의로 휴대폰을 만들어 쓰고는 요금을 내지 않고 잠적한 것. 송 실장은 전 염전주를 명의도용으로 신고하고, 휴대폰을 개통한 대리점주와 통화해 A씨는 휴대폰을 개설한 적도 요금을 낸 적도 없다는 확인을 받아내 휴대폰 개통에 성공했다.

첫 번째 소원을 이룬 후, 이제 가족을 찾기로 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A씨의 기억을 더듬어 수소문해봤지만 좀처럼 가족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남동생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연락이 닿았다. 남동생 역시 가족들과 연락이 끊겨 병원에서 연고를 찾다가 경찰을 통해 A씨에게 연락이 닿은 것. 부모와 다른 형제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 후였지만 큰 형이 남긴 조카들이 있었다.

동생은 결국 사망했다. 동생이 사망하자 A씨에게 동생의 사망보험금과 함께 1억5000여만원의 빚이 넘겨졌다. 역시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던 동생은 보증을 잘못 서 빚을 떠안은 상태였다. A씨는 상속을 거부할 수 있었지만, A씨가 상속을 거부하면 빚은 조카들에게, 또 그 자녀들에게 이어질 수 있었다. 확실한 정리가 필요했다. 송 실장은 발달장애인 지원 단체 변호사의 법률 도움을 받아 빚을 정리했다.

그렇게 송 실장이 A씨의 후견인이 된 지 3년이 다 돼간다. 그 사이 A씨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시설에 살며 일자리도 얻었다. 남들처럼 낮에 일을 하고 휴일에는 쉰다. 지난달에는 송 실장과 함께 지방에 사는 조카를 찾아가 밥도 샀다. 6개월 된 조카 손주를 위해 옷도 사고, 조카사위의 선물도 준비해 갔다.

그사이 송 실장은 매달 후견 활동 보고서를 후견감독인에게 제출하고 있다. 후견인은 후견 감독을 맡은 기관에 재산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몇 번이나 연락을 하고 만났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등을 보고해야 한다. 후견감독인은 혹시나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피후견인의 의사나 인권에 반하는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 재산을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감독한다. 후견인을 최종 감독하는 이는 법원이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은 A씨는 이제 독립을 준비 중이다. 송 실장과 A씨는 독립을 위해 수입에 맞춰 돈을 쓰는 법부터 건강관리를 위해 식생활을 챙기는 법까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한다.

A씨가 처음으로 후견인의 지원을 받아봤다면, 송 실장 역시 처음으로 누군가의 후견인이 돼봤다.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송 실장은 "사회적 인식이 발달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들은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배우지 못해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며 "후견인이 할 일은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일부분을 채워주는 것, 결국은 조금씩 스스로 설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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