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승진 탈락 소식을 들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뇌출혈로 쓰러진 검찰 수사관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업무가 과중했다고 볼 수 없고, 기존 질병인 고혈압 등이 뇌출혈을 발병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0단독 임수연 판사는 재경지검 소속 검찰 수사관 A씨가 "공무상 요양승인 신청을 승인하지 않은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7월 기관장 오찬 참석을 위해 청사 현관으로 나가다 몸에 불편한 기색을 느껴 사무실로 돌아갔다. 정오가 지난 시각 그는 쓰러진 채 발견됐고 뇌출혈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게 됐다.

이후 A씨의 가족은 공무상 요양승인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공무원연금공단은 "A씨의 뇌출혈이 자신의 체질적 소인과 함께 원래 앓고 있던 고혈압과 흡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공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A씨는 행정소송을 냈다.

A씨 측은 재판에서 "지난해 6월 이후 업무를 담당할 인원이 부족해지는 열악한 상황에서 실적을 늘리기 위해 업무강도가 크게 증가됐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4월과 7월에는 각종 유력 인사들에 대한 업무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쓰러지기 1주일 전에는 대검 사무감사까지 받아야 했다"며 "이 같은 스트레스로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승진 탈락 소식을 듣고 뇌출혈이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승진을 앞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업무 등을 처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제했다.

다만 "A씨가 직접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업무를 수행하는 실무자가 아니고, 업무를 보고받고 지시하는 관리자"라며 "A씨가 직접 본인의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으며 과로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가 사용한 업무용 컴퓨터에 규칙적으로 출근해 6시에 퇴근해 온 기록이 남아있는 점이 이 같은 판단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또 "A씨는 이전에도 유사 업무를 맡아 온 경력이 있고 대검 사무감사를 받는 것도 처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며 "부임한 지 2년이 돼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관련 업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중했다고 보이지 않고 오히려 상당히 익숙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뇌출혈은 대부분 고혈압 환자에게 나타나는 질병"이라며 "A씨에게 고혈압이 있었고 오랜 기간 흡연량이 상당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승진 탈락 소식을 듣고 뇌출혈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어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임은 이해가 가지만 어느 조직이든 일부 구성원만 승진이 되는 구조에서 승진탈락으로 인한 충격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