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선배들을 따라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에 갔는데 경찰들이 가만히 있는 저희를 때리는 거에요. 나라가 국민을 지켜준다고 배웠는데 그동안 몰랐던 현실을 마주한 거죠. 그 때부터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어요. 제가 군대에 가면 전·의경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사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생님'을 꿈꿨던 사범대 03학번 문명진씨(33). 누가봐도 모범생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이는 문씨는 전과자다. 26살 때 '감방'에 들어가 1년3개월을 살다 나왔다. 병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문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 25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신모씨(22)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올들어 13번째 유죄 판결이다. 이날 대법원 판결로 또 한 명의 청년이 1년6개월의 징역을 살게 됐다. 병무청에 따르면 매년 평균 500여명의 청년들이 병역거부를 이유로 전과자가 되고 있다.

◇매년 500여명 병역거부로 '징역 1년6개월'

'양심적 병역거부자'. 종교적 이유 또는 개인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문씨가 감옥에 들어간 2010년이나 7년이 흐른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병역거부자들에게 감옥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최근 청주지법 등 1·2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들이 종종 나오지만 대법원은 요지부동이다. 현행 병역법상 양심적 병역거부는 불법이고, 형사 처벌 대상이다.

"정해진 절차가 있어요. 병무청에 병역 거부를 통보하면 검찰에서 연락이 와요. 조사 받으러 오라고. 조사 받고 나면 재판을 받고 형이 선고되고 구속이 돼죠. 내용도 다 똑같아요. 교도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따로 수감이 되기도 해요."

양심적 병역거부로 2010년 수감된 김모씨(32)는 말했다. 재판에서 검사는 징역 2년을 구형하고 판사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다. 김씨는 "재판 때 검사가 졸고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재판은 형식적으로 흘러간다. 김씨 역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교도소 생활도 비슷하다. 이들은 주로 교도관의 사무실을 청소하거나 취사 지원 등의 노역을 한다. 귀중품이 있는 사무실 청소를 시키고, 칼과 불을 쓰는 식당일을 시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1년3개월 정도 형기를 채운 뒤 가석방된다. 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는 대신 이들은 교도소 안에서 나름의 '병역'을 이수하는 셈이다.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흐른다. 정례화된 절차가 생길 만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운데 상당수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그래서 '특이한 종교 때문에 별난 선택을 한 누군가의 이야기'로 치부되곤 하지만, '다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병역거부자 후원 모임인 '전쟁없는 세상'을 통해 상담 받고 종교 외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 숫자는 100여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왜 감옥행을 감수하면서까지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일까? 김씨는 "군 문제로 한국의 젊은 남성들과 사회적 집단들이 뒤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강제로 특정 연령대의 남자들을 집단에 넣는 것, 그 안에서 공유되는 문화로 재사회화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선택의 여지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김모씨(27)는 "10대 후반쯤 군대에 대해 생각하게됐는데, 가야하는 이유를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었다"며 "불합리하다는 생각만 들고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어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입대를 앞둔 김씨는 병역을 거부할 생각이다.

곽모씨(22)는 지난해 신체검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군대는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곽씨는 "군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수록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나는 전쟁을 반대하는데, 왜 당연히 가야 하나. 개인의 선택과 자유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곽씨는 지난달 헌법재판소에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조항에 대해 판단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의 3번째 판단은?

20대 청년에게 징역형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을 산 이들 가운데 "후회한다"고 하는 이는 없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 때문에 "너만 양심이 있냐"는 비난을 받곤 하지만 '양심'이라는 단어는 이들의 신념을 모두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2006년 수감된 이용석씨(37)는 "오랜 고민 끝에 한 선택"이라며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모르지만 군대와 감옥 중 선택해야 했고 그 중 감옥을 선택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쪽에선 "그럼 군대는 누가 가느냐. 국가는 누가 지키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씨는 "남북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부가 한 노력은 강한 군사력을 가지려 한 것 뿐인데,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왔느냐"고 물었다. 이어 "병역거부가 오히려 평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군사력이 아닌 다른 차원의 안보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지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30대 김씨는 안보와 국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군대는 필요하다"면서도 "문제는 합리적인 방법이 있는데 개인의 선택은 무시한 채 억지로 징병제를 유지하는 체제에 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나"고 했다. 곽씨 역시 "다들 군대에 가기싫다고 하면서도 내게는 결국 너만 손해볼테니 그냥 군대에 가라고 한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강제적인 병역 의무에 문제제기를 하면 다른 선택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유일한 희망은 병역법 개정이다. 2015년 간통죄가 폐지된 것처럼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조항도 언젠가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폐지될 것으로 이들은 기대하고 있다.

헌재는 2004년과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토록 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두 차례 모두 9명의 재판관 중 2명만이 반대 의견을 냈다. 이강국 전 헌재소장 등이 2011년 "절대적이고 진지한 양심의 결정에 따라 병역의무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1년6개월 이상의 징역형이라고 하는 무거운 형벌이 부과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 그나마 병역거부자들에게는 위안이었다.

곽씨가 낸 헌법소원에 대한 헌재의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병역거부자들은 헌재의 세번째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