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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딱 들어맞는 외국어 표현이 없어 우리말 발음대로 쓴다고 하죠. '갑질'(gabjil) 얘깁니다. 갑질은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국어사전 '우리말샘'에 등록된 말이기도 합니다.
미스터피자에 대한 검찰 수사로 갑질 문제가 또 다시 불거졌습니다. 사실 기업들의 갑질 횡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공정거래위원회 시정조치만으로 충분하지 못한 경우 갑질은 사법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갑질은 어떤 법으로 어떻게 처벌될까요? 이미 법원의 판결이 난 사건들과 현재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미스터피자 사건을 두루 살펴보려 합니다.
◇남양유업, 아모레퍼시픽···
갑질하면 가장 먼저 '남양유업 사태'가 떠오르실 겁니다. 파장이 워낙 커 이른바 '남양유업 방지법'이 제정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리점법)이 그겁니다.
남양유업 사건은 2013년 5월 한 젊은 영업사원이 나이 많은 대리점주를 상대로 막말과 욕설을 퍼부은 내용의 통화파일이 공개되며 불거졌죠. 남양유업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리점주들의 주문 내역을 조작해 주문하지도 않은 물량을 떠넘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리점주들이 항의하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반품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밀어내기 영업'으로 기소된 김웅 전 남양유업 대표는 1·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기업에 대한 과징금은 대법원 선고 결과 5억원으로 확정됐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특약점과 판매원 사이 계약에서 당사자가 아닌데도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방문판매원들을 점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동 배치했습니다. '을'인 특약점 측은 계약 갱신을 거절당할까봐 반발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일로 법인과 전직 상무 이모씨가 재판에 넘겨져 각각 벌금 5000만원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들 기업과 책임자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모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입니다. 거래상 '갑'의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거래를 했다는 거죠. 공정거래법 23조 4항은 '자기의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 만들어진 대리점법도 적용 법조항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법은 △구입 강제 △판매목표 강제 △불이익 제공 △보복조치 등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불공정 거래 과정에서 기업비리 단서가 포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경우 횡령·배임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겠죠. 현재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정우현 전 MP그룹(미스터피자 가맹본부) 회장이 그런 경우입니다.
◇미스터피자 갑질, 이전에도 거듭 논란
이제 미스터피자 사건을 들여다볼까요. 미스터피자의 갑질은 최근 검찰 수사로 주목을 받았을 뿐 갑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지난 3월에도 '보복 영업'의 피해를 입은 한 가맹점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죠. 검찰이 미스터피자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는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미스터피자는 가맹점에 제휴할인행사를 강제하면서 비용부담을 전가했다가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본사의 갑질 횡포를 규탄한다"며 보도자료를 낸 가맹점주 이모씨에게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지한 적도 있습니다. 미스터피자는 이씨가 계속 가맹점을 운영하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보도자료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 사실"이라며 "영업을 계속해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검찰이 주목하는 건 미스터피자의 '치즈 통행세'와 '보복 출점'입니다. 정 전 회장이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동생이 실소유한 회사를 중간납품업체로 끼워넣은 뒤 치즈 가격을 부풀리고 해당 업체에 부당이득을 안겨줬다는 겁니다.
탈퇴한 가맹점 인근에 매장을 내고 가격을 후려치는 방식으로 보복했다는 것도 주요 수사 대상입니다. 광고료 명목으로 가맹점 수익금의 4%를 걷어 일부를 엉뚱한 데 쓴 의혹, 자신의 자서전을 가맹점에 대량 구매하도록 강요한 의혹 등도 있습니다.
정 전 회장이 3일 검찰에 소환됩니다.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와 더불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미스터피자의 갑질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습니다. 할인행사 비용을 가맹점에 떠넘기는 갑질로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뒤로도 벌써 9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가맹점주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미스터피자에 대한 검찰 수사는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눈물이 이미 다 말랐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앞서 가습기 살균제 수사도 그랬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검찰 수사로 갑질이 중단될 수 있다면 다행일 겁니다. 정 전 회장 소환으로 급물살을 탈 검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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