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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이지혜 디자이너 |
#지난 2012년 10대 청소년들이 대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신촌대학생 살인사건'. 인터넷 사령(死靈) 카페에서 스스로를 마녀·퇴마사로 지칭하며 활동하던 이들은 '마녀'로 추앙받는 박모씨의 활동을 남자친구 김모씨가 방해하자 그를 죽이기로 했다. 이들은 김씨와 일면식도 없던 윤모씨를 '해결사(킬러)'라 부르며 살인을 청부했고, 윤씨는 자신의 역할에 심취해 끔직한 범죄를 실행에 옮겼다.
지난 3월 발생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강력범죄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5년의 시차가 있지만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터넷'에서 시작된 모의가 '현실'에서의 범죄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른바 'O2O'(Online to Offline·온라인→오프라인) 범죄다.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김모양(17)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즐기던 '자캐'(자작 캐릭터)에서 시작됐다. 자캐는 SNS 이용자들이 특정한 상황을 설정해두고, 그 안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일종의 역할극이다. 김양은 이 중에서도 강력범죄와 잔혹극 등을 다룬 '시리어스 커뮤니티'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어른들은 모르는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로 나와 극단까지 나아간 사례"라고 말했다. 문제는 언제든 '제2의 김양'이 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사건처럼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일수록 강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더 커진다.
◇스마트폰 열면 주르륵…범죄의 시작= 요즘 아이들에게 범죄는 낯설지 않다. 범죄를 생생히 묘사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범죄스릴러', '추리물', '두뇌게임'이라는 감칠 맛 나는 수식어와 함께 아이들을 기다린다. TV 앞까지 갈 필요도 없다. 지금 스마트폰을 들고 엄지손가락만 움직여도 범죄 관련 영상들이 수백, 수천개씩 쏟아져 나온다.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묘사한 동영상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이런 환경에선 청소년 강력범죄가 쉽게 싹틀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박사는 "별다른 제재 없이 범죄에 노출되니 장난과 범죄의 경계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실제로 아이들끼리 '이런 것도 해봤다'고 자랑하고 과시하다 범죄까지 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양도 잔혹 범죄물에 오랜 기간 노출돼 있었다. 김양의 PC엔 미국 드라마 '한니발' 전편이 다운로드 돼 있었다. 한니발은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와 범죄 프로파일러 사이의 심리전을 다룬 드라마로, 잔혹성 탓에 19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자캐' '봇' 어른들은 모르는 'SNS 일탈'= 트위터엔 '봇'이라는 계정들이 있다. 봇은 특정 콘텐츠 애호가들을 위해 관련 내용을 주기적으로 게시한다. '연극 프랑켄슈타인 대사봇'은 이 연극의 대사를, '아이돌 봇'은 특정 아이돌과 관련된 정보나 일화를 올리는 식이다. 봇 같은 SNS 계정을 매개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청소년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놀이문화가 형성돼 있다. 김양은 드라마 한니발의 대사를 게시하는 봇을 구독하면서 공범 박모양(18)과 '인육 파티'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주변 인물의 사진을 합성한 뒤 이름, 학교 등 개인정보와 함께 유포하는 방식으로 괴롭히는 '지인 능욕' 역시 가해자에게 단순한 '놀이'(?)지만 상대방은 정신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런 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SNS에선 다양하고 과격한 형태의 일탈 행위가 일어날 수 있고, 일탈에 둔감해지면 죄의식이 없어질 수 있다"며 "청소년들이 SNS를 그런 식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어른들은 그 세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게 왜 잘못이에요?" 무관심 속 방치되는 청소년들= '방치'된 청소년일수록 인터넷과 SNS를 통해 범죄에 이끌리기 쉽다. 가정 또는 학교 울타리 밖에 있는 청소년에게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빼놓을 수 없는 '친구'다. 더 자극적인 동영상, 게임을 찾게 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다 보면 범죄 행위에 무감각해진다.
◇"이게 왜 잘못이에요?" 무관심 속 방치되는 청소년들= '방치'된 청소년일수록 인터넷과 SNS를 통해 범죄에 이끌리기 쉽다. 가정 또는 학교 울타리 밖에 있는 청소년에게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빼놓을 수 없는 '친구'다. 더 자극적인 동영상, 게임을 찾게 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다 보면 범죄 행위에 무감각해진다.
이 박사는 아이가 잘못을 해도 훈육하지 않는 것 역시 '방치'의 일종이라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범죄 청소년들을 보면 부모에게 통제를 받거나 혼났던 경험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의 훈육이 미약하다 보니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나의 행위로 남들이 어떤 피해를 입게 될까'에 대한 공감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부천청소년법률지원센터의 김광민 변호사는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매체는 항상 존재했다"며 "문제는 제도권 밖에 방치된 청소년은 사회화, 윤리화될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회 밖에서 겉돌다 모여 또래문화를 형성하는데, 그 안에서 공유되는 문화는 게임이나 인터넷 등 폭력적인 문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에서 '(강간이) 이렇게 큰 죄인줄 몰랐다'거나 망치로 화장실 유리를 깬 아이가 '그냥 망치가 있길래'라는 식으로 실제 범죄인 줄도 모르고 저지른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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