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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청사 / 사진제공=뉴스1 |
"법관들에 대한 평가를 투명하게 해주고 법관 승진 시스템을 바꾸는 게 사법개혁입니까? 누구를 위해 사법개혁을 한다는 겁니까? 국민에게 더 나은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고민은 안 보이네요."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고위 법관의 얘기입니다. 각계에서 사법개혁을 부르짖지만 정작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재판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다는 지적입니다.
최근의 사법개혁 논의는 올초 대법원이 법관들의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행사를 축소할 것을 지시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에서 촉발됐습니다. 사법부 내 법관들의 성향을 분류한 '블랙리스트'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전국 각급 법원의 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자회의(판사회의)가 사법행정 권한의 분산과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추가조사를 요구했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가조사를 거부했습니다. 법관들 사이의 내홍이 장기화되면서 사법행정에 대한 외부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는 사법부가 별개의 섬처럼 떨어져 있는 탓에 외부로부터의 독립성은 유지될지언정 사법부 내에서 법관 개개인의 독립은 오히려 침해되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입법부·행정부의 견제를 받아야만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게 개헌특위 측의 주장입니다. 일부 외국처럼 사법부로부터 독립된 평의회 조직을 만들어 사법행정을 맡기고 사법부에는 재판 기능만 남기는 방안 등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이 국민들에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 전직 고위 법관은 "날로 열악해지는 재판 서비스의 질을 어떻게 제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최근 사법개혁 논의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6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년 전국 2894명의 판사들이 처리한 사건의 수는 2061만여 건에 달했습니다. 판사 1명이 1년 동안 평균 7122건의 사건을 처리한 셈입니다.
정식으로 재판을 거쳐야 하는 본안사건만 추리더라도 2015년에 처리된 사건은 153만6000건이나 됩니다. 판사 1인이 530건씩 처리한 거죠. 공휴일·주말을 제외한 1년 평균 근무일(약 230일) 기준으로 하루에 처리한 재판의 수가 2.3건에 달합니다. 최종적으로 법률관계를 확정짓는 상고심 사건만 해도 2015년 4만1900건에 달했습니다. 국민들 입장에서 질 좋은 재판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국회와 판사회의, 시민단체 등이 저마다 사법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법서비스의 고객인 국민은 정작 논의 대상에서 소외돼 있습니다. 어떠한 사법개혁안도 국민의 지지없이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국민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법개혁안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를 위한 사법개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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