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하거나 경찰관서로 임의동행을 요구할 때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소속·이름을 밝히고 질문·동행의 목적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술값을 내지 않고 술집 주인·종업원은 물론 경찰관에게까지 폭행을 가한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과정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본인의 소속·이름을 밝히지 않은 경찰관의 단속행위는 위법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4년 12월11일 선고, 2014도7976)가 있어 소개한다.

A씨는 2013년 2월 경기도 한 술집에서 술값 문제로 시비가 있다는 경비업체의 지원요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B순경과 C경사를 상대로 폭행을 가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A씨는 파출소에 끌려간 후에도 또 다른 경찰관 D경위의 입을 비롯한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범행을 저질렀다. 검찰은 A씨를 공무집행방해, 상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카페에서의 행위는 경찰들에 의해 체포·감금된 것에 저항하는 정당행위이고 파출소에서의 행위도 불법체포로 인한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정당행위"라며 본인이 무죄라고 주장했다.

1심은 경찰관들에 대한 상해죄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하고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봤다. A씨가 술값을 내지 않고 술집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저지하던 B순경과 C경사가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 소속·이름도 밝히지 않은 점이 위법한 공무집행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심에서는 판단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B순경, C경사가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은 점은 인정되지만 이들은 정복차림이었고 A씨 진술내용에 의하더라도 B순경 등이 경찰관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며 "A씨가 B순경 등에게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는 등 폭행으로까지 나아가 공무집행을 방해한 이상 B순경 등이 A씨를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적법한 공무수행"이라고 봤다.

대법원도 2심의 판단을 인용했다. 대법원은 B순경 등의 행위가 위법한 공무집행인지에 대해 "불심검문을 하게 된 경위, 불심검문 당시의 현장상황과 검문을 하는 경찰관들의 복장, 피고인이 공무원증 제시나 신분확인을 요구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검문하는 사람이 경찰관이고 검문 이유가 범죄행위에 대한 것임을 A씨가 충분히 알고 있었다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심검문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관련조항
형법 제136조(공무집행방해) ①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3조(불심검문) ① 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다.
1. 수상한 행동이나 그 밖의 주위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볼 때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
2.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한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사람
③ 경찰관은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할 때에 그 사람이 흉기를 가지고 있는지를 조사할 수 있다.
④ 경찰관은 제1항이나 제2항에 따라 질문을 하거나 동행을 요구할 경우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질문이나 동행의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하며, 동행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동행 장소를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