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재판장 허가에 따라 1·2심 주요사건 판결 선고 때 재판정 내 모습을 중계방송할 수 있도록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의결했다는 소식에 대한 직장인 김모씨(29)의 반응입니다. 김씨 뿐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이번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인데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 19세 이상 성인 중 66.8%가 박 전 대통령 선고 공판 생중계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생중계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생중계 허용 여부는 재판장이 결정하게 됩니다. 피고인 등 사건 관계자들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공개에 따른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할 경우 생중계를 허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촬영시간과 방법을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재판부만 촬영하고, 피고인의 모습은 촬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죠.

이번 결정에 따라 박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지난해부터 큰 관심을 끌어 온 국정농단 사태 주요 피고인들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실시간으로 중계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인터넷 기사에는 벌써부터 "그래서 대체 중계방송을 언제 하냐"는 댓글이 달리는 등 관심이 높은데요. 그런데 실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은 어떤 생각일까요. 과연 국민들처럼 이번 결정을 마냥 반기는 분위기일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판사들은 "선고 공판 생중계 결정으로 재판부의 부담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인데요.

재경지법의 A판사는 "국민적 관심이 큰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쟁점이 복잡·다양하고 검토해야 할 증거자료 등이 많아 제 때 판결을 내리기도 버거울 것"이라며 "생중계를 하게 된다면 이유를 설명하고 주문을 읽는 방식도 종전보다 더 신경써야 해 현실적으로 일이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판사는 또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판결을 쓴다든지 하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여론 등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는 점에서 판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재판장에게 중계 허용 권한이 주어져 있는데 이렇게 되면 '허용해도 부담, 안 해도 부담'이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판사들 사이에서는 '점점 판사하기 힘들어진다'는 푸념도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피고인의 인격권 침해 문제를 지적한 판사도 있었습니다. 한 지방법원의 B판사는 "기본적으로 피고인은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대원칙이 있는데, 하급심 유죄 판결이 생중계됐다가 나중에 판결이 뒤집힐 경우 평생 범죄자로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형사 재판 선고의 경우 재판장이 유죄든 무죄든 판단을 내리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증인의 증언이나 관계자들의 민감한 부분이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며 "사건의 내용이 너무 세세하게 공개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한가지 이상한 게 있습니다. 지난 6월 전체 판사 2900여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선 '국민적 관심이 큰 재판의 1·2심 선고는 생중계를 허용하자'는 응답이 73%에 달했습니다. 그땐 대부분의 판사들이 재판 생중계에 찬성했는데, 지금은 왜 분위기가 다를까요?

이에 대해 재경지법의 C판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이 아니어서 편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며 "만약 자신의 사건이 생중계되는 것을 원하냐고 물었으면 더 많은 판사들이 반대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선고가 생중계된 뒤 좋은 반응을 얻은 상황에서 법원 내에서도 선고 정도는 생중계를 허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선고 뒤 재판부에 쏟아질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한차례 기각했던 조의연 부장판사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는데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실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어떤 판결을 내려도 판결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라며 "선고 공판이 생중계 된다면 법관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는 만큼 재판부에 가해질 잠재적 위협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어떠신가요. 살펴보니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제도가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논의가 조금 더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해외에서도 재판 생중계 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추세인데요. 미국 대다수의 주와 영국의 경우는 이미 재판 과정 일부 또는 전체를 생중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선고 공판 생중계 결정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확대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왕 도입된 제도인 만큼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착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