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에 대한 불만은 법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1906년 미국의 법학자 로스코 파운드가 한 말이다. 사법행정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지난 2010년 세계헌법재판소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가 사법독립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사법부 구성원과 함께 행정부와 입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독립기구를 구성해 사법행정에 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사법행정의 최우선 가치로 ‘법관 독립’을 꼽았다. “판사에 대한 승진 및 인사 제도가 있는 대륙법 체계에서 법관에 대한 평가는 불가피하다”면서도 “법관의 독립을 해친다면 평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사법평의회’를 두고 있다. 영국의 경우 법무부가 법관 선발과 임용 등을 맡고, 사법행정 전반은 법무부 산하 법원행정청이 관장한다. 동시에 법관과 변호사, 공모로 선정된 일반인 등으로 구성된 법관선임위원회가 법관 인사에 관여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 체계인 독일 역시 연방법무부가 인사를 비롯한 사법행정을 총괄한다. 법관은 법관선출위위원회와 연방법무부장관 등이 함께 선출하는데, 위원회는 각 주의 법무장관 16명과 연방의회가 뽑은 의원들 16명으로 구성된다.

미국은 사법행정의 주요 정책을 만드는 곳과 집행하는 곳이 분리됐다. 예산과 조직 관리, 입법안 제출 등 사법행정은 사법행정처가 맡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은 연방대법원장이 의장을 맡는 연방사법회의에서 이뤄진다. 연방항소법원장과 지방법원 판사 등 판사들로 구성되는데, 매년 두 차례 회의를 열어 주요 의사결정을 하고 사법행정처는 이를 집행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한국형 사법행정 제도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때 판사가 원하는 지역에서 줄곧 근무할 수 있는 ‘지역 법관’(향판·鄕判) 제도가 운영됐지만, 향판과 지역사회의 유착에 따른 이른바 ‘황제노역’ 사건이 불거지며 2014년 폐지됐다. 지금은 원칙적으로 2년마다 근무지를 옮겨 다닌다. 그러다 판사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독일은 우리처럼 판사 승진제를 두고 있지만, 종신 법관으로 한번 임명되면 퇴직할 때까지 같은 법원에서 근무할 수 있다. 물론 본인이 원하고 평가가 좋다면 지방법원에서 고등법원으로 옮겨가는 길은 열려있다.

한 판사 출신 교수는 “법관도 인간이어서 한 근무지에서 오래 일하면 유착이 될 수도 있고 게을러질 수도 있다”며 “법관이 인사권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패와 나태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