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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이지혜 디자이너 |
2002년 벌어진 강도살인 사건의 진범이 최근에서야 붙잡혀 법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15년 전 벌어진 사건의 범인을 지금에 와서야 잡은 이유가 뭘까요?
그 답은 진화한 과학수사 기법에 있습니다. 2012년 도입된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아피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전국민의 지문을 모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 뒤 범죄현장에서 수집된 지문과 비교해 신원을 확인하는 시스템입니다.
먼저 어떤 사건인지부터 살펴볼까요? 사건은 2002년 12월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장모씨(52)는 변변한 직업 없이 살아가던 중 쌓여만 가는 빚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씨는 범행을 결심합니다. 타깃은 서울 구로구의 한 호프집 주인 A씨(여·당시 50세). 장씨가 A씨보다 2년 앞서 이 호프집을 운영했던 터라 밤늦게 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는 것과 여주인 혼자 남아있는 사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건 2012년 12월14일. 새벽 1시30분쯤 호프집에 들어간 장씨는 기회를 엿보다가 1시간쯤 뒤 종업원이 퇴근하자 계획대로 범행을 벌였습니다. 둔기로 A씨를 수십회 내리쳐 숨지게 한 뒤 현금 15만원과 A씨 딸 명의의 신용카드를 챙겼습니다. 장씨는 훔친 현금과 카드로 70만원 상당의 물품을 샀다고 합니다.
장씨는 현장에 있던 맥주병에 묻은 자신의 지문을 수건으로 닦아냈습니다. 깨진 맥주병에서 장씨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지문 일부가 발견됐지만 당시 기술로는 불완전한 지문을 분석해낼 수 없었습니다. 완전한 지문을 분석하는 일에도 낑낑거리며 5일 이상을 쓰던 때였죠. 발견된 지문의 크기는 1㎝ 미만이었으니 엄두를 낼 수 없었고, 경찰은 그저 도난카드의 용처를 찾고 몽타주를 뿌리는 일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면서 이 사건 역시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지문자동검색시스템이 경찰에 도입되면서 수사가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1㎝가 채 안되는 크기의 조각 지문이 주요 증거로 쓰였습니다. 경찰은 고성능 장비로 조각 지문의 특징점을 10여개 정도 추린 뒤 기존 지문들과 비교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장씨를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주요 단서로 쓰인 게 하나 더 있었습니다. 키높이 구두로 추정되는, 뒷굽이 둥근 모양의 발자국이 현장에 남아있었던 겁니다. 경찰은 이를 염두에 두고 장씨의 집에서 유사한 발자국이 남는 키높이 구두 두 켤레를 발견했고 지난 6월 장씨를 검거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지문과 발자국 때문에 15년 만에 덜미를 잡힌 장씨는 범행 전반을 부인하고 잡아뗐지만 구속을 면하지 못하자 그제서야 자백했다고 합니다.
원래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올해말까지였습니다. 범인을 잡아봐야 올해가 지나면 재판에 못 넘긴다는 얘기죠. 그런데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태완이법'(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공소시효가 사라졌습니다. 사건에 대한 수사가 재개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이밖에 용인 교수 부인 살인사건,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아산 갱티고개 노래방 주인 살인사건의 경우도 태완이법 덕분에 늦게나마 범인을 잡아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사라졌고 과학수사 기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미제 살인사건이 해결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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