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톱니바퀴가 굴러가듯 정교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도 빈틈이 있습니다. 법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아 생긴 빈틈, 법끼리 부딪혀 생긴 모순이 만든 빈틈, 소수자라서 법이 없어서 생긴 빈틈,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소외된 곳에 서 있어서 생긴 빈틈, 세상이 변하면서 생긴 빈틈까지…우리가 모르는, 하지만 어느날 우리가 서있게 될 수 있는 빈틈을 찾아, 틈을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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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장애인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광화문역 지하도 농성장을 방문해 희생자들에게 참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땅 위로 올라오기까지 1842일이 걸렸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이 2012년 8월21일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지 올해로 5년, 여섯 번의 여름과 다섯 번의 겨울을 지하에서 보낸 이들은 오는 5일 농성을 마치고 땅 위로 올라온다.
지난달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농성장을 찾아 공동행동과 함께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 해결점을 찾아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수용시설 폐지다. 이들이 5년간 노숙을 하면서까지 이를 요구한 이유는 뭘까.
◇장애등급제, 같은 등급이면 똑같이? "장애 이유는 수백가지인데…"
장애인등급제는 장애 척도에 따라 장애인을 1~6등급으로 나눠 의료·복지 지원을 하는 제도다. 장애인복지법 제32조에 따라 의료기관은 심사를 거쳐 장애인에게 등급을 부여한다. 장애인활동지원법 등은 이 등급을 근거로 지원 여부를 정한다. 문제는 등급을 정할 때 의학적 기준만 고려된다는 점이다.
장애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1등급이라도 시각장애인과 정신지체장애인이 필요한 지원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애인등급제에 따른 지원은 일괄적으로 이뤄진다.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고 송국현씨는 지난 2014년 4월 화재로 사망했다. 거동을 전혀 할 수 없었고, 발성장애로 소리를 낼 수 없었고, 초기치매를 앓고 있었지만 심사기관에서 의학적 기준으로 나눈 송씨의 장애 등급은 3등급.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활동보조지원인 서비스를 제공받기에는 부족했다. 집에 불이났지만 나오지도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 송씨는 침대 위에서 발견됐고, 결국 사망했다.
장애인 단체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의학적 기준에 따른 일괄 지원이 아닌 복지 서비스별로 개개인에게 맞는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장애등급을 중증과 경증으로 간소화하기로 했지만 관련 단체들은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장애인활동지원법 등 장애인 지원에 관한 개별 법과 제도가 등급에 따라 정해져있어 개개인의 필요성과 욕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개인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송국현씨는 지난 2014년 4월 화재로 사망했다. 거동을 전혀 할 수 없었고, 발성장애로 소리를 낼 수 없었고, 초기치매를 앓고 있었지만 심사기관에서 의학적 기준으로 나눈 송씨의 장애 등급은 3등급.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활동보조지원인 서비스를 제공받기에는 부족했다. 집에 불이났지만 나오지도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 송씨는 침대 위에서 발견됐고, 결국 사망했다.
장애인 단체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의학적 기준에 따른 일괄 지원이 아닌 복지 서비스별로 개개인에게 맞는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장애등급을 중증과 경증으로 간소화하기로 했지만 관련 단체들은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장애인활동지원법 등 장애인 지원에 관한 개별 법과 제도가 등급에 따라 정해져있어 개개인의 필요성과 욕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개인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모든 책임 미루는 부양의무제 "연락 끊긴지 오래인데…"
부양의무제는 2014년 '송파세모녀' 사건 이후 꾸준히 개선이 요구됐다. 홀로 식당일을 하며 장애가 있는 딸을 돌보던 어머니가 팔을 다쳐 일을 하지 못하게 돼 생계가 막막해졌지만, 어머니와 두 딸이 서로가 부양의무자로 엮여있어 어떤 정부 지원도 받지 못했다. 세 모녀는 죽음을 택했다.
부양의무제는 경제활동이 가능한 가족이 그렇지 못한 가족을 부양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법 제974조는 직계혈족과 배우자, 기타 친족은 서로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정해두고 있다. 문제는 부양의무자에게 제대로 부양받을 상황이 아닌데도, 서류상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수급자 기준에 해당하지만 부양의무자가 있어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빈곤층이 약 93만명에 달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8조와 제8조의2에 따르면 수급권자에게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자가 부양을 거부해 실질적인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이를 엄격하게 해석해 제대로 적용이 안됐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방침이다. 지난 10일 발표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 계획'에 따르면 오는 11월부터 수급자 및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이 포함되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또 부양의무자가 노인이나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부양받지 못하는 비수급빈곤층은 지자체의 개별 심사를 거쳐 수급대상으로 선정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했다.
◇대구희망원, 7년간 사망자 309명…장애인은 갇혀 살아야 하나? 수용시설 폐지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장애인 수용 시설인 대구시립희망원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총 309명이 사망했다. 사망 사유조차 불분명한 이들도 있다. 지난 2013년 익명의 내부고발자가 시민단체 등에 고발했지만 2016년에야 인권위원회 조사가 이뤄져 세상에 알려졌다.
장애인들 스스로는 이곳을 '인간사육장'이라 불렀다. 수년간 수백명이 학대받고 죽어갔지만 오랜시간 실태는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와 단절된 '수용시설'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같은 형태의 시설 폐지를 요구한다. 격리시설의 '수감자'가 아닌 지역사회의 '주민'으로 살고싶다는 얘기다.
해외에서는 이미 지난 1970년대부터 탈시설 운동이 진행됐다. 미국에서는 1977년 필라델피아 장애인 수용시설인 펜허스트(Pennhurst)가 인권침해 논란으로 폐쇄되면서 탈시설 운동이 본격화했다. 스웨덴에서는 1980년대 지방자치단체 관할 수용시설이 폐지됐고 1997년에는 '시설폐쇄법'이 만들어졌다.
인권위 의뢰를 받아 '장애인 탈시설 방안 마련 실태조사' 연구를 수행 중인 사단법인 두루의 김용진 변호사는 "해외 시행 결과를 보면 예산 차이도 크지 않았다"며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의뢰를 받아 '장애인 탈시설 방안 마련 실태조사' 연구를 수행 중인 사단법인 두루의 김용진 변호사는 "해외 시행 결과를 보면 예산 차이도 크지 않았다"며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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