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우리의 규칙은 우리가 만든다

[the L] 김광민 변호사의 '헌법 파헤치기'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예전 초등학교에서는 가로로 널따란 책상에 짝꿍을 지어 두 명씩 앉고는 했다. 같은 책상을 나누어 쓰는 사이니 사이좋게 지내면 좋으련만 짝꿍과 항상 티격태격 다투고는 했다. 특히 영역다툼은 주요 갈등요소였다. 책상 한 가운데 줄을 그어놓고 신체 중 일부가 넘어오면 한 대 맞기, 물건이 넘어오면 상대방이 갖기 등 다양한 규칙들이 정해졌다. 

약속을 했으니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다툼은 이어졌다. 손이 넘어가 한 대 맞은 친구는 맞아서 억울했지만 때린 친구는 규칙을 준수했을 뿐이었다. 물건이 조금이라도 넘어가면 냉큼 집어가서 “내꺼야~”라고 외쳤다. 그 때부터 “돌려 달라”, “그럴 수 없다”는 다툼이 시작됐다. 다툼을 방지하고자 그어 놓은 금이 오히려 다툼을 유발했다.

책상의 중앙선은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넘어오면 한 대 맞기는 신체의 자유 침해이고 넘어온 물건의 강탈은 재산권의 침해였다. 반면 책상을 같이 쓰는 아이들에게 물리적 저항선도 없이 그저 책상 한 가운데 주~욱 그어진 금은 실수이던 고의이던 너무나도 침범하기 쉬운 금기였다. 약속의 위반은 쉬운 반면 벌칙은 과도하다보니 갈등은 오히려 증폭되었다.

책상의 중앙선이 교실의 평화를 깨면 선생님이 개입하게 된다. 선생님은 짝꿍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타일렀지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책상 위의 자기영역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였다. 급기야 선생님은 중앙선을 금지시키기도 하고 중앙선을 넘어 빼앗긴 물건을 되찾아 주기도 했다. 넘어왔다며 짝꿍을 때린 아이는 혼나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아무리 현명한 방법을 찾아내도 아이들의 불만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선생님이 만든 규칙이지 자신들이 한 약속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규칙을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폐기해 버렸으니 불만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약속을 만들었다. 중앙선은 유지하되 신체의 자유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적절한 벌칙을 강구하기도 했고 중앙선 없이도 한 책상을 나누어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했다. 사실 어떠한 방법을 강구하더라도 2인용 책상의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규칙에 대해서는 불만이 훨씬 적었다.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규칙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지키려고 노력했다.

교실의 평화를 위해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규칙은 아이들과 함께 만들되 집행은 선생님이나 학생들의 대표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선을 넘어 온 짝꿍을 때리거나 물건을 빼앗는 것처럼 규칙을 만든 아이들이 집행까지 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넘어오지 않았는데도 넘어왔다며 때리거나 넘어온 정도에 비해 과도하게 때릴 위험 등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규칙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법은 사회적 규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 제정권은 사회구성원, 즉 국민에게 있다. 그런데 인구가 너무 많고 전 국토에 널리 분포해 살다보니 모두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쳐 법을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방법이 대표자의 선출이다.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국민들의 뜻을 수렴해 법을 만들도록 하면 국민의 뜻도 반영되고 소통의 효율성도 확보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헌법기관이다.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입법권을 행사하여 법을 만든다. 그리고 실행은 행정부에 맡겨 법을 만든 이와 실행하는 이를 분리했다. 책상의 중앙선 사례에서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법의 준수 여부를 판단할 이도 필요하다.

그게 바로 사법부다. 이는 몽테스키외가 주장한 삼권분립의 형태다. 국민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행정부에서 실행하며 사법부에서 잘 준수되고 있는지 판단하도록 권한을 나누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정치형태다. 삼권분립에서 더 나아가 대만과 같이 오권분립을 추구하는 국가도 있지만 현대 대부분의 국가는 삼권분립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삼권분립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다. 현대 정치체제에서는 삼권분립의 추가 행정부 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사회가 고도로 분화되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입법부가 사회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가 보편화됨에 따라 전기자동차에 적합한 자동차 안전도 기준 등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는 전문적 분야이어서 관련 규정을 입법부가 마련하긴 어렵다. 

부동산 투기는 정부의 규제방식에 따라 시시각각 대상과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규제를 입법부에 맡기게 되면 언제나 부동산 투기세력 보다 한 발 늦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에 들어서는 의원입법 보다 담당 부처의 공무원들에 의한 정부입법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삼권분립의 추가 행정부에 기울어지는 현상은 입법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법부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삼권분립에 따르면 경찰이나 검찰은 수사를 담당하고 판단은 사법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점차 과태료와 같이 행정단위에서 부과하고 징수까지 하는 제재방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더해 경미한 사건까지 복잡한 사법절차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인식하에 경찰의 즉결심판이나 검찰의 약식구형 또한 증가하고 있다. 즉결심판과 약식구형은 경찰과 검찰의 청구에 의해 법원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사법부는 형식적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삼권분립은 권력적 균형이지 양적 균형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삼권 중 행정부의 규모가 비대해 지면 그에 따라 권력도 비대해질 위험성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법을 실행하는 정부가 입법까지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법이 실행에 편하거나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 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형량까지 결정하게 된다면 공정성을 잃을 위험성이 따라다니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행정부의 비대화에 따른 위험성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각종 전문분야들을 탐구해가며 모든 법을 만들고, 국회에 국회의원들을 상주시켜 놓고 필요할 때마다 즉시 법을 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신호위반이나 과속 또는 경미한 다툼까지 모두 법원에서 처리할 수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대 정치체제에서 행정부가 비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장치 강화를 통해 권력적 균형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입법부에 의한 국정감사와 약식재판청구에 대한 사법부의 정식재판 결정 등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들이다. 

하지만 정쟁이 끊이지 않는 국회가 과연 행정부에 대한 감시기능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을 견제하기에 현재 사법부의 인력은 지나치게 부족하다. 일상적인 과로에 시달리는 판사들에게 약식재판이나 즉결심판까지 일일이 검토하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 수 있다.

헌법이 입법권을 국회에 부여한 것은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들이 지켜야 할 규칙, 즉 법을 만드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설사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변화의 속도가 빨라 정부입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감시와 견제의 기능마저 해태해서는 안 된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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