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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판결②] "KTX 여승무원, 코레일 직원 아냐"?

[the L] 해고자 자살 부른 대법원 판결…"불법파견 용인" 비판도

편집자주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최종심급이다. 특히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이후 모든 판결의 가이던스가 된다. 오는 25일 퇴임하는 양승태 대법원장도 6년간의 임기 동안 수많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남겼다. 그 중엔 세상을 바꾼 의미 있는 판결도, 논란을 남긴 아쉬운 판결도 적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법조팀(the L)이 법학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추려낸 양승태 대법원의 '세상을 바꾼 판결들'과 '논란의 판결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삽화=이지혜 디자이너

지난 2004년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던 KTX가 출범했다. 여승무원들은 '철도의 꽃'이었다. 입사경쟁률은 14대 1이나 됐다. 석사에 유학파도 있었다.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2004년 채용 공고에서 여승무원에게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여승무원들은 계약직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해 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을 자회사인 홍익회에 위탁했다. 그러다 홍익회에서 분리된 철도유통으로 넘겼다. 계약 기간 2년이 지나자 공사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관광레저라는 공사 자회사와 계약을 맺으라고 했다. 2년 넘게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현행법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승무원들은 '공사 정규직과 같은 안전 관련 업무를 하는데도 자회사를 옮겨다니게 한다'며 계약을 거부했다. 또 공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나섰다. 철도공사는 이적을 거부하며 파업한 여승무원 280여명 전원을 해고했다. 2006년 5월의 일이었다.

◇1,2심 KTX 승무원들 승소 대법서 뒤집혀

KTX 여승무원들은 지난 2008년, 2009년 공사를 상대로 두 건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자신들이 한국철도공사 열차팀장 등 정규직과 함께 같은 열차 내에서 근무하며 공사의 지휘감독을 받는 등 공사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있거나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재판의 쟁점은 공사가 근로기준법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급(또는 위탁 등) 형식을 취했는지, 즉 KTX 여승무원들이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근로자파견은 파견업체가 고용한 노동자를 사용업체가 업무지시하고 지휘·감독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도급은 수급인이 독립적,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여 일을 완성하면 도급인이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의 일종이다. 도급에 해당할 경우 공사가 여승무원들의 고용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열차 내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공사의 열차팀장과 객실서비스를 담당하는 승무원들의 업무영역과 근무실태가 실제로는 중복되는 측면이 많았고 △공사는 승무원들의 채용, 교육, 징계 등에 관여하며 사실상 승무원들의 임금수준, 근무장소와 근무시간 등도 공사가 결정하였으며 △복장과 헤어스타일, 업무수행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등 공사가 하청업체인 홍익회나 철도유통 소속 노동자인 승무원들에 대하여 상당한 정도의 지휘·명령을 행한 사실이 있었다.

소송 전부터 노동부는 위의 이유로 여승무원과 열차팀장이 독립적인 업무수행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2008년부터 시작된 법정 투쟁에서 1,2심 법원 역시 연달아 해고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철도공사와 한국철도유통의 위탁계약은 위장도급"이라며 "따라서 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2015년 대법원은 2월 해고 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직원이라고 판단한 원심을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위와 같은 근무양상을 인정하면서도 승무원들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및 근로자파견 주장을 모두 부인한 것이다(2011다78316, 2012다96922). 

대법원의 설명에 따르면 같은 열차에서 근무하는 철도공사 소속 열차팀장과 하청 자회사 소속 열차승무원의 업무는 서로 무관하고, 열차팀장이 열차승무원에게 업무상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열차팀장은 안전을, 열차승무원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업무가 분리돼 있어 적법한 도급이었다는 것이다. 즉 1000명의 열차를 운행하는 KTX 승무원 4명 중 1명만 안전업무를 담당했다는 소리였다. 같은 해 말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했다.

◇판례상 '근로자파견'이 파견법상 개념과 다를 수 있어

이 판결은 나오자마자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논쟁을 불렀다. 당장 판결에 적시된 근로자파견의 판단 기준이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의 개념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파견법상 정의에 따르면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 것도 대법원의 판단기준에 따르면 근로자파견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적시한 근로자파견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은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이 아니라 사용사업주가 파견노동자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파견노동자가 사용사업주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는지 △파견사업주의 인사·노무관리상의 독립성이 인정되는지 △계약 목적의 특정성과 전문성, 기술성이 있는지 △파견사업주가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 등이었다.

파견법상의 근로자파견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다. 일반 상식을 가진 국민이 파견법에서 대법원과 같은 기준을 도출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기준을 두고 근로자 파견을 판단할 때 핵심적인 요소와 기타 요소를 구별하지 않고 단순 열거했다.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어떤 요소를 불충족하고, 어떤 요소를 충족시킬 경우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모호해 법원 해석에 따라 갈릴 수 있게 해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도급으로 볼 수 있는 증거와 근로자파견으로 볼 수 있는 증거들을 단순 나열한 후 별다른 설명 없이 공사가 도급을 준 것이라 판단한 점도 의문을 낳았다. 대법원은 경제적으로 우월적 지위인 공사가 책임회피를 위해 이를 임의로 변경하거나 실상과 다른 서류상의 형식문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을 외면했다.

◇1인당 빚 1억원, 지급명령 도달…"불법파견 용인한 판결" 비판

지난 2015년 철도노조 홈페이지에는 조사(弔辭) 한 편이 떴다. '스물다섯에 KTX 승무원이 된 유난히 잘 웃던 아이는 스물일곱에 해고돼 서른여섯에 생을 마감했다.' 2015년 3월 KTX 여승무원들이 철도공사와의 근로자 지위를 다툰 대법원 판결 직후 한 해고 여승무원 박모씨가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그는 세 살 아이의 엄마였다. 박씨는 아이에게 '빚만 남기고 가 미안하다'고 했다. 이 가족의 세상은 적어도 판결 후 확실히 바뀌었다.

대법원 판결은 빚을 낳았다. 1,2심에서 승소해 승무원들이 받은 8640만원의 임금은 부당이득이 돼 4년만에 고스란히 토해내야 한다. 매달 이자만 100만원 넘게 붙는다. 고인이 된 박씨의 빚도 고스란히 남편에게 상속됐다. 철도공사는 올해 1월 KTX 해고 승무원 33명에게 1인당 1억 원에 달하는 가처분 지급 임금을 반환하라는 법원의 지급명령을 보냈다. 여승무원들은 고용차별과 부당해고에 대해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에 진정을 제기하기로 했다.

일선 변호사들은 그 동안 불법파견의 근거가 됐던 단초들이 상당수 부정당하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양지웅 중앙노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해당 판결에서 묵시적 근로관계의 판단근거인 매뉴얼 등이 있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후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것이 좀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대법원 판결은 우리 사회의 불법파견, 위장도급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이 해고 승무원들을 다시 고용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에 철도공사는 즉각 다시 승무지부와 함께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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