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리포트

[논란의 판결①] '복불복' 돼버린 통상임금 소송

[the L] 2013년 대법원 "통상임금에 상여금 빼는 건 무효지만, 무효 요구도 잘못" 모순된 판결"…'예측가능성 훼손' 지적

편집자주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최종심급이다. 특히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이후 모든 판결의 가이던스가 된다. 오는 25일 퇴임하는 양승태 대법원장도 6년간의 임기 동안 수많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남겼다. 그 중엔 세상을 바꾼 의미 있는 판결도, 논란을 남긴 아쉬운 판결도 적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법조팀(the L)이 법학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추려낸 양승태 대법원의 '세상을 바꾼 판결들'과 '논란의 판결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법원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사건을 판결한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기아차 사옥이 교통 표지판 너머로 보이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청구한 원금 6588억원에 이자 4338억원이 붙은 합계 1조926억원 중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원을 인정한 4223억원의 미지급분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번 소송은 근로자들이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받지 못한 통상임금을 회사에 청구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사진제공=뉴스1

"어떤 판사를 만나는지에 따라 판결이 좌우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복불복' 판례다." 2013년 12월18일 선고된 '통상임금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한 노동전문 변호사의 평가다.

최고법원인 대법원은 이 사회의 갈등을 최종적으로 해결하고 정리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2012다89399)에선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모호하고 모순된 판결로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지금도 통상임금 소송이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에서 대법원도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통상임금이 뭐길래

사건은 2010년 1월까지 약 20년간 갑을오토텍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A씨가 회사에 528만원을 청구하면서 불거졌다. 퇴직시점 기준으로 과거 2년간(2008년 1월~2010년 1월) 덜 받은 미사용 연차수당(이하 연차수당)과 퇴직금을 더한 금액이 528만원에 달하니 이를 지급하라는 요구였다.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당연히 포함돼야 하는데 그간 상여금을 빼고 통상임금을 계산한 뒤 이를 기준으로 적은 연차수당과 퇴직금을 줬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가 정기적·일률적으로 근로의 대가로 받는 금액'으로 시급이나 일급, 주급, 월급 등을 일컫는 것으로, 각종 수당을 산정할 때 기준으로 활용된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나 야간·휴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근로자에게 더 지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연차수당도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근로자를 예고없이 해고하려 할 때 지급해야 하는 해고예고수당(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이나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회사가 휴업할 때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휴업수당(통상임금의 70%) 등도 모두 통상임금액을 토대로 산출된다.

그런데 통상임금을 정하는 기준이 기업마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회사는 기본급에 상여금 뿐 아니라 각종 수당을 모두 더한 금액을 통상임금으로 삼은 데 비해 또 다른 회사는 기본급에 일부 수당만 더해 통상임금을 정했다.

◇"지킬 건 지켜야 하지만, 때론 안 지켜도 된다"?

A씨의 주장에 갑을오토텍은 당황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자'는 게 노사간 합의사항이었는데 A씨가 대뜸 상여금을 포함시켜 통상임금을 재산정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갑을오토텍은 A씨의 주장이 민법상 일반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돼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사안의 파급효과를 고려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통상임금에 속하는 특정 임금요소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자'는 노사합의가 있었다더라도 이는 임금산정의 최저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을 무시하는 합의로 무효라고 지적했다. 즉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자는 기존 노사합의가 잘못됐으니 △상여금을 포함해 통상임금을 재산정하고 △이를 기초로 연차수당,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 달라는 A씨의 주장은 정당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법원은 동시에 A씨의 요구가 '신의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A씨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국내 대부분 기업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시키는 노사합의가 관행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한발을 뺐다. 그러면서 "근로자 측이 임금협상 당시 전혀 생각지 못한 이유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더해 이를 토대로 추가적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종국적으로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 같은 근로자 측의 주장은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며 A씨 승소취지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대법원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 합의는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을 무시한 것인 만큼 무효지만, 이를 무효화해달라는 근로자의 요구는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 될 수 있다는 모호하고 모순된 판결을 내린 셈이다. 

이 판결의 모순은 당시 소수의견을 냈던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등 3명의 반대의견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들은 반대의견을 통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며 "거듭 살펴봐도 그 논리에서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통상임금 소송은 '복불복'?

논란의 핵심은 '신의칙 위반'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라는 민법 제2조와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기업의 존립 위협' '기업에 추가적 재정부담 초래' 등이 근거로 제시됐지만 이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후 잇따르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들은 수년간 당기순이익 추이나 향후 설비투자용 자금수요 등을 법정에서 구구절절 설명하며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노조 주장을 배척해달라고 주장해왔다. 법이 정한 정당한 임금요구라고 하더라도 '신의칙 위반'이라는 주장만 인정되면 노조 측의 논리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한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재판부는 '신의칙 위반' 성립요건이 아니라 정기성·고정성·일률성 등 통상임금 판별요건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법리검토를 했어야 했다"며 "법원이 법리가 아니라 현실적 상황에 맞춰 무리하게 융통성을 추구하려다 보면 예측가능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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