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성근 /사진=뉴스1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연예계 인사를 퇴출시키려 했던 이른바 'MB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피해자인 배우 문성근씨가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직접 소환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씨는 18일 오전 10시40분쯤 검찰 조사를 위해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도착해 "(이번 일로)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서 이 전 대통령에게 직보를 했다는 것이 확인이 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씨는 자신의 심경에 대해 "첫번째는 경악스럽고 두번째는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이 내부 결재를 거쳐 음란물을 제조·유포·게시를 한 것"이라며 "이명박 정권의 수준이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일베'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세계 만방에 국격을 있는 대로 추락시킨 것에 대해 개탄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2011년 문씨와 배우 김여진씨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진을 제작해 유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배우가 침대에 있는 모습을 합성한 이 사진에는 '공화국 인민배우 문성근, 김여진 주연 육체관계'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문씨는 또 "국정원에서 블랙리스트 명단과 직접 공작한 부분에 대해 발표를 해 줘 고맙다"며 "블랙리스트가 여러 경로를 통해 내려갔고 실행된 점, 그 이후 보고가 된 점 등 전 과정에 대한 문건까지도 발표를 해서 전모를 밝힐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극우단체가 한 행사들이나 일베와 같은 데에 직·간접적 지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예산이 낭비된 부분에 대해 꼭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씨는 앞서 자신의 SNS(소셜네크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려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그는 이날 "지금까지 5∼6명이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며 "이번달 까지 피해사례 수집을 해서 다음달에는 소장을 내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채동욱 변호사의 합류 여부에 대해서는 "사적으로 연락이 온 것이라 그 분의 입장을 확실히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김용민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씨는 '국정원에 한 말씀 해달라'는 질문에는 "현재 적폐청산 TF가 열심히 활동하는데 내적 저항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정원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과거 잘못된 일에 대한 청산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아픔이 있더라고 견디고 꼭 청산해주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태스크포스)는 지난 11일 이명박정부 시절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를 공개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임 초기인 2009년 7월 국정원은 당시 김주성 기획조정실장 주도로 82명의 인사를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으로 지목하고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해 이들 활동에 불이익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배우 문씨를 비롯해, 소설가 이외수씨, 이창동 영화감독, 방송인 김미화씨 등 82명이 이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정원은 지난 14일 이 사건을 검찰에 정식으로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사건을 즉시 국정원 정치개입 전담수사팀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문씨를 상대로 이명박정부 시절 그가 받은 불이익 등 피해 정황에 대해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문씨 외에도 다양한 피해자들을 불러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조사할 계획이다. 오는 19일에는 방송인 김미화씨가 검찰에 출석한다.

한편 검찰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또 원 전 원장뿐만 아니라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 관계자들로도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검찰 관계자는 "구체적 피해 사례를 살펴보고 있는데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며 "또 조사를 진행하다보면 책임선상에 있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