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헌법 제42조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직을 겸할 수 없다.

제20대 국회의석비율은 더불어민주당 121, 자유한국당 107, 국민의당 40, 바른정당 20, 정의당 6석 등 총 299석이다. 경쟁관계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모두 국회 과반수인 150석의 확보에 실패했다. 국회의 일반적인 의결정족수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모두 단독으로 국회의결정족수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양대 정당이 모두 단독으로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당은 존재감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다수당임에도 121석에 불과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과반수인 150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바른정당의 20석과 정의당의 6석으로는 부족했다. 40석을 확보한 국민의당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국민의당과 협조하더라도 국회 과반수를 확보할 수는 없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의결정족수 확보를 좌절시키기는 충분했다.

단독으로 의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지만 선택에 따라 의결 또는 부결을 결정지을 수 있는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쥔 국민의당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의 처리과정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장기간 권한대행 체제를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처리가 간절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결국 임명동의안의 부결은 피할 수 없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을 맹비난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과 예산안 등 국회에서 처리해야할 안건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국민의당과 마냥 대립각을 세우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국민의당이 쥔 캐스팅보트의 위력을 실감한 더불어민주당은 관계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추미애 당대표가 직접 나서 국민의당에 화해의 제스처를 표했다. 청와대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수장의 동시 부재만은 막아달라며 읍소했다. 그렇게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은 국민의당의 협조를 얻어 찬성 160표로 간신히 통과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임명동의안으로 홍역을 앓아야했다. 하지만 정권초기 인사문제로 홍역을 앓는 것은 모든 정부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장이 공석이었고 대법원의 임기는 거의 끝나가고 있던 시점에 출범한 문제인 정부가 다른 정부에 비해 출범초기 인사 대상자가 더 많았을 뿐이다.

‘인사청문회법’은 고위공직 후보자는 반드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였던 김이수와 대법원장 후보자였던 김명수 역시 국회인사청문회를 거쳤다. 이에 더해 국무위원이 되는 각부의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대표적 고위공직자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대통령은 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각부의 장관을 지명한다. 때문에 정권 초기에는 인사청문회가 줄지어 이어진다.

인사청문회는 바람직한 능력을 가진 이가 취임할 수 있도록 고위공직 후보자를 검증하는 절차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정부·여당을 견제하려는 야당과 국정의 원만한 운영을 위한 원동력을 확보하려는 정부·여당 간 힘겨루기의 모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 탄탄한 내각을 구성하려는 정부와 기선을 제압하려는 야당 간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정권초기 줄지어 이어지는 인사청문회는 정치적 싸움의 장으로 변질되기 쉽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당은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고 말한 것은 정권초기 인사문제의 정치적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원불패”라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현직국회의원 중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사례가 한 번도 없었던 점을 빗대어 만들어진 말이다. 정부는 정권초기 인사문제가 원만하게 풀리면 향후 국정운영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출범초기부터 인사문제에 발목을 잡히면 계속하여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크다. 

이러한 고민에서 정부는 각부 장관 후보자로 현직 국회의원을 지목하고는 한다. 인사청문회 대상이 동료 국회의원이다 보니 날선 검증이 부담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나도 언젠가 장관 후보자가 될 수도 있는데...”라는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반드시 이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현직국회의원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례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고대엽 노동부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자 현직 국회의원인 김영주를 후보자로 지명해 인사청문회를 통과시킨바 있다.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 후보자의 검증기능 외에도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의 견제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국회의 정부에 대한 견제장치인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이 동료 국회의원을 검증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보인다. 더욱이 “의원불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직 국회의원으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삼권분립 체계에서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이 행정부 소속인 각부 장관이 된다는 것은 권력의 분립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헌법은 국회의원의 겸직을 제한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 다른 일을 겸직한다면 국민의 대표 기능이 소원해 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겸하고 있는 직무와 국민의 대표자로서 권한과 의무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위험도 있다. 국회의원이 장관에 임명되면 더 이상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스스로 행정부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할 수도 없어진다.

이처럼 헌법의 기본정신에도 위배될 소지가 큰 국회의원의 장관임명이 가능한 것은 ‘국회법’ 때문이다. ‘국회법’은 구무총리와 국무위원을 국회의원의 겸직금지의무에서 제외시키고 있다(국회법 제29조). 그리고 정부조직법에 따라 각부 장관은 국무위원이 된다(정부조직법 제26조 제2항).

현직 국회의원의 장관임명은 주로 여당의 중진급 의원을 대상으로 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여당의 3선 의원이다. 심지 노무현 정부에서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정세균 의원을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하기까지 했다. 여당 중진의원들의 장관임명은 여당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강화시킨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운영의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는 견제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 중진의원들이 행정부 장관을 겸직하게 된다면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리고 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는 여당은 대통령의 권한강화로 이어진다.

대통령의 권한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의 장관임명이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제6차 개헌 이전 헌법은 “국회의원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지방의회의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1969년 제6차 개헌에서 해당 규정이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로 고쳐지면서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수 있게 되었다. 제6차 개헌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자신의 3선을 위해 헌법을 개정한 것으로 흔히 ‘3선 개헌’이라 불린다. 대통령의 권한 강화는 3선에 도전함으로써 박정희의 장기집권 발판을 마려하고자 했던 ‘3선 개헌’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국회의원의 장관겸직을 가능하도록 만든 개정 역시 대통령의 권한강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으로 가장 오랫동안 집권했던 대통령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와 같은 강력한 권한의 대통령은 권력의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현대 정치체제에 적합하지 않다. 현직 국회의원이 장관후보로 지명되어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하고 정부의 여당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는 근래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강력한 권한의 대통령을 통해 장기집권을 추구했던 박정희가 남긴 유산인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다시 금지되어야 한다. 헌법이 국회의원의 겸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