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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엔 리모컨, 한손엔 폰을 든 집순이…"나야 나"

[the L] 피로사회가 낳은 집돌이·집순이 현상…집 자체에 대한 관심 늘어난 이유도

삽화=이지혜 디자이너

#. 소문 난 집순이 이소윤씨(가명). 토요일 정오에 간신히 일어나 몸을 버둥거리는데 '띵동' 메시지가 온다. 저녁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약속을 취소하잔다. '아쉽다 ㅠㅠ'고 답장을 보냈지만 실제 소윤씨의 얼굴은 '^-^'. 씻기 전에 말해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한손엔 TV 리모컨, 한손엔 휴대폰을 쥐고 알람시계는 안 보이게 아래로 엎어뒀다. 

#. 5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3개월째 집돌이 생활을 만끽 중인 정영진씨(가명). 지난 세월 주말을 내리 밖에서 보낸 스스로가 신기해졌다. 토·일요일 중 하루는 집에서 푹 쉬어야 월요일 맑은 정신으로 출근이 가능한데 말이다. 요즘엔 하루 한번 외출해 친구와의 약속, 병원 진료, 생필품 구입 등 모든 일을 해결한다. 집에 있는 날 생수가 떨어지면?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쓱' 주문한다. 

두 사람 이야기에 공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집돌이·집순이일 가능성이 높다. 긴 연휴를 앞두고 귀향이나 여행 대신 '집 콕'을 선택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돌이·집순이라고 하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하나의 이름이 됐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8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전체 응답자의 39.4%가 추석연휴 귀향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대신 무얼 할 것이냐는 물음에 절반 이상인 58.7%가 '집에서 휴식'을 꼽았다. 여행을 가겠다고 답한 이는 31.9%에 불과했다. 지난 여름휴가를 앞두고도 상황은 비슷했다. 시장조사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휴가 때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는 응답자가 53.2%로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왔다.

집돌이·집순이가 늘어난 탓인지 이들의 일상을 그린 TV 예능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남성 아이돌그룹 '워너원'의 강다니엘, '엑소'의 시우민 등 대세 집돌이들이 대거 등장하는 MBC '이불 밖은 위험해', 집에서의 일상 풍경을 관찰 카메라로 담은 '나 혼자 산다'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 종영한 JTBC '효리네 민박'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효리가 입고 있던 로브, 이상순과 주방에서 마시던 차 등 '집안 아이템'도 덩달아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집돌이·집순이들이 왜 이렇게 많아진 걸까?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피로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가 절실하게 와닿을 만큼 노동 강도가 높다보니 집에서의 쉼을 가장 큰 휴식으로 여기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바깥의 온갖 피로한 환경에서 자신을 격리시키는 편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가치관의 변화도 한몫 했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휴식의 멋스러움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화려한 생활을 등지고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이효리가 멋스러워보이듯 중요시되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진정한 휴식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자기 재충전 시간이 주는 의미가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온전한 휴식 공간인 집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다. 요즘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집 꾸미기' 열풍이 한창이다. 인스타그램 검색란에 '#집꾸미기'란 해시태그를 입력하면 46만여건의 게시물이 뜬다. #홈스타그램, #집스타그램, #신혼스타그램, #나혼자산다그램 등 해시태그도 이에 못지 않다. 곽 교수는 "우리 사회도 집의 편안함을 즐기는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문화가 발달한 것도 하나의 이유"라며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혼자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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