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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했어도 무죄"…정당방위, 어디까지?

[the L] [Law&Life-정당방위는 면죄부인가 ①] 약혼녀 살해범 격투 중 숨지게 한 30대男 '정당방위' 인정…27년만에 첫 '정당방위 살인'

2015년 9월 발생한 '공릉동 살인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사진=뉴스1


2015년 9월24일 새벽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가정집에서 두사람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한명은 집주인 A씨(38)와 결혼을 약속하고 함께 살던 B씨(여·당시 33세), 다른 한명은 휴가 중이던 육군 상병 C씨(당시 20세)였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일한 생존자 A씨는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 당일 C씨는 노원구 대학가에서 새벽 4시50분까지 친구와 소주 3병을 나눠마셨다. 이후 문이 열려있던 A씨의 집에 들어가 자고 있던 B씨를 살해했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나간 A씨는 C씨와 마주쳤다. 그리고 A씨는 몸싸움 끝에 흉기를 빼앗은 뒤 C씨를 살해했다.

 

C씨가 왜 A씨의 집에 들어갔는지, B씨를 왜 살해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C씨가 사망하면서 이는 영원히 밝힐 수 없는 일이 됐다. A·B씨와 C씨 사이에선 어떤 접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C씨가 만취 상태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현장 인근 다른 집의 유리창이 깨져있었고 여기서 C씨의 혈흔이 발견된 점 등에 비춰 근처를 배회하다 저지른 우발적 범행으로 짐작될 뿐이었다.


◇27년만에 첫 '정당방위 살인'


C씨가 숨져 죄를 물을 수 없는 상황에서 수사는 C씨를 살해한 혐의로 A씨를 처벌할 수 있는지에 집중됐다. 쟁점은 A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수 있는지였다.

 

정당방위가 규정된 형법 제21조에 따르면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해 상당한 이유를 갖고 방위행위를 한 경우' 정당방위로 인정돼 처벌받지 않는다. 방위행위가 도를 넘어 과잉방위가 됐다해도 형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다. 특히 방위행위를 한 사람이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한 상태였음이 인정되면 처벌받지 않는다.

 

경찰은 수사결과를 토대로 A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C씨가 A씨를 향해 흉기를 휘둘러 부상을 입힌 점 △C씨가 흉기를 빼앗긴 이후에도 끝까지 반항한 점 △A씨가 C씨를 살해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사건을 넘겨받고 2년 간 수사를 이어온 검찰도 최근 '죄가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했다. 검찰은 사망한 B·C씨의 유족들을 면담하고 시민위원회의 의견과 국민 법 감정 등을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살인 사건이 수사 단계에서 정당방위로 마무리된 건 27년만에 처음이다. 1990년 눈앞에서 애인을 성폭행한 사람을 격투 끝에 살해한 박모씨 사건에서 검찰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적이 있다. 같은 해 성폭행범으로부터 자신과 생후 3개월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흉기를 휘둘러 상대방을 숨지게 한 가정주부에 대해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돼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법원 "쌍방 폭행이면 정당방위 아냐"


그동안 우리나라 법원은 정당방위를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해왔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만취 상태로 흉기를 들고 살해 협박을 한 전 남편을 살해한 조모씨(45)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조씨는 전 남편이 엎질러진 술을 밟고 미끄러진 틈에 반격했다. 조씨는 자신과 자녀들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전 남편이 바닥에 쓰러졌을 때 생명과 신체에 대한 침해 행위가 일단락된 것"이라고 했다.


1996년 처남을 흉기로 다치게 해 기소된 한 매형도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사건 당시 처남 D씨는 만취한 상태에서 누나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화가 난 매형 E씨가 나서면서 몸싸움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몸무게가 85kg이 넘는 D씨가 62kg쯤 되는 E씨의 가슴 위로 올라타 목 부위를 눌렀고, 호흡이 곤란해진 E씨는 허둥대다 손에 잡힌 과도를 휘둘렀다. D씨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고 E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E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결국 E씨에겐 징역 10월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이 같은 싸움의 경우 가해행위는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행위의 성격을 가진다"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공격 의사를 갖고 싸우다 일어난 일이라면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한 쪽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던 상황이었고 이를 방어할 목적으로 행동했음이 인정돼야만 정당방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당방위가 살인 면죄부?

이처럼 지금까지 정당방위가 제한적으로만 인정돼왔음에 비춰볼 때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정당방위를 인정한 검찰의 이번 처분은 전향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법무법인 이경의 최진녕 대표변호사는 "혐의가 가장 중한 살인 사건에서 검찰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정당방위의 해석 범위가 넓어질수 있는 계기가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콤파스의 이필우 변호사는 "싸우다 상대방의 흉기를 빼앗은 시점부터는 좀처럼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위급한 상황을 겪은 당사자에게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앞으로 가해자가 흉기를 휴대했거나, 가족이 상해 또는 살인을 당한 사건 등에 대해 정당방위를 더 넓게 인정해야 법 현실에 맞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반면 정당방위를 확대 인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과도한 방어행위로 상대방이 숨지거나 크게 다치게 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정당방위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을 경우 범죄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처벌할 수 없어 불법 상태를 방치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정당방위는 어디까지나 예외 규정일 뿐인 만큼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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