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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뇌물죄라고? 농담하지 마라"

[the L]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뇌물죄' 주지사의 어설픈 여론전, 결국 웃음거리…박근혜 前대통령이 진심어린 고백한다면?


2008년 12월9일 새벽 6시,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밀로라드 블라고예비치의 집에 FBI(연방수사국)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수사관들은 자고 있던 블라고예비치를 깨워 수찹을 채웠다. "뇌물 혐의로 체포하겠다"는 말에 그는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그가 체포된 건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공석이 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자리를 돈 받고 팔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선거자금을 많이 내거나 주지사 퇴임 이후를 보장해줄 사람을 오바마의 후임자로 고르려 했다. 첩보를 입수한 FBI가 법원의 허가를 얻어 한달 동안 그의 사무실과 전화를 감청하면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했다.

보석금 4500달러(510만원)를 내고 풀려난 그는 얼마 안 가 뇌물교사·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사건을 맡은 패트릭 피츠제럴드 연방검사는 "블라고예비치의 행위는 무덤에 누워 있는 링컨을 돌아눕게 만들 정도"라고 했다. 주의회가 그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며 사퇴를 압박했지만 그는 일축했다. 오히려 "상원의원 임명권은 여전히 나에게 있다"며 임명권 행사를 강행하겠다고 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는 '여론전'을 선택했다. 그는 CNN의 '래리 킹 라이브'를 시작으로 ABC NBC CBS 폭스뉴스 등 주요 방송사에 잇따라 출연했다. 방송에서 그는 자신이 '여론재판'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돈을 받기도 전에 체포됐다. 그는 "난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상원의원 자리에 여러명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하려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의 여론전은 공석인 상원의원에 흑인 롤랜드 버리스를 지명하면서 정점에 이른다. 오바마 등 소수인종의 환심을 사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오히려 당혹스러워했고, 여론은 싸늘했다. 장외 여론전에서 그는 패배했다. 

2010년 8월 연방법원 배심원은 그에게 적용된 23개 혐의 가운데 22개에 대해선 평결을 유보하고 1개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바로 FBI에 허위 진술한 혐의였다. 이어 2011년 6월 재심에선 17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그는 결국 징역 14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됐다. 지난해 블라고예비치는 백악관에 조기 형집행정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그러나 오바마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종종 법정싸움 대신 장외 여론전을 선택한다. 그게 자신의 특기라고 생각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박 전 대통령은 16일 첫 법정진술에서 자신에 대한 재판을 두고 '정치보복'이라고 했다. 억울함이 묻어난다. 때마침 영국 기반의 국제인권 컨설팅업체 MH그룹은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재판을 포기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다고 본 것 같다. 그럴 만도 하다. 뇌물을 건넸다고 지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마당이다. 뇌물을 받았다고 의심되는 박 전 대통령만 무죄 판결을 받긴 어려운 노릇이다. 

박 전 대통령은 형량에도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지 않고 '변호인단 총사퇴' 같은 도박을 할 수는 없다. 자신의 '복심'인 유영하 변호사까지 내쳤다. 판사가 어떤 양형을 선고하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의미다. 어차피 정권이 바뀌면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거란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의 1차 목표는 석방이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이 옥중 단식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동정여론을 불러일으켜 재판부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여론전이 성공했을 때 얘기다. 국민적 공감없이 여론전이 성공할 순 없다. 국민들이 기다리는 건 전직 대통령의 진심어린 고백이다. 변명으로 일관한 블라고예비치의 어설픈 여론전은 웃음거리가 됐을 뿐이다. 

재판 결과에 개의치 않겠다면 차라리 최순실씨에게 속아 실수했다고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건 어떨까? 정말 다음 정권에서 대통령 특사를 기대한다면 '반성 않는 부패 정치인'보단 '최순실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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