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1997년 병원에 머리를 크게 다친 환자가 실려왔다. 술에 취해 넘어져 머리를 마닥에 찧은 환자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보호자는 퇴원을 원했다. 이틀간 치료비만 260만원이 나온 상항. 앞으로 더 쌓일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거듭되는 보호자의 강력한 요구에 병원 측은 '사망해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은 뒤 환자를 퇴원시켰다. 집으로 돌아간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한지 5분만에 사망했다.

사건은 법원으로 넘겨졌다. 대법원은 환자가 사망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퇴원을 허락한 의사들에게 '살인방조' 혐의를 적용,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를 시작으로 '연명치료'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은 2008년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으로 본격화됐다. 식물인간 상태였던 70대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평소 '품위있는 죽음'을 원했던 김 할머니의 의사를 받아 인공호흡기를 떼달라고 병원 측에 요구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가 '살인방조' 혐의로 처벌을 받을 것을 우려한 병원 측은 이를 거절했지만, 대법원은 2009년 국내 처음으로 연명의료 중단 판단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회복가능성이 없는 경우 또는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연명치료를 해야 하는지를 놓고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달 24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존엄사를 선택한 환자가 나왔다. 평소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을 해왔던 암환자 A씨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사업' 시행 직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등록했다. 결국 A씨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심폐소생술 등을 받지 않고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지난해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되면서 가능해졌다. 지난달 23일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사업이 시작됐고 내년 2월4일부터는 본격 시행된다.

그래팩=이지혜 디자이너

◇'돈' 때문에 '치료중단' 우려

'돈' 때문에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하는 이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된다. 실제 존엄사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오리건 주에서는 말기 환자에게 보험사가 존엄사 선택을 종용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환자가 생명연장을 위한 치료를 받으려 보험사에 의료비를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약값이 너무 비싼데 처방을 받아도 생명 연장 가능성이 없다며 약값 대신 존엄사 선택 후 발생하는 비용을 지급해주겠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환자가 의향을 밝히지 않고 의식을 잃었을 경우 가족들이 의료비 부담 때문에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안을 만들면서 논의됐던 부분"이라며 "다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위해 불필요한 의료비를 지출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라도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사전에 밝힌 임산부가 임종과정에 처했을 때 태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추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