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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창현 기자 |
가수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됐습니다. 신해철에 대한 추억 중에, 그가 남긴 ‘유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신해철은 2011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비디오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그가 유언장에서 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말은 저의 마음에 아직까지 깊이 남아 있습니다. 2011년은 제가 늦게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투병 생활을 시작하셨던 해입니다. 그래서 더 기억이 선명합니다.
유언(遺言)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풀이하면 후손에게 '남기는(遺) 말(言)'입니다. 유언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Will'입니다. 'Will'의 사전적인 의미에는 ‘의지’라는 뜻도 있습니다. 독일어로는 'Testament'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계약', 교회에서 쓰는 '성경'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들에서 나오는 ‘남긴다’, ‘의지’, ‘계약’이라는 키워드는 ‘유언’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거리를 줍니다.
부모가 생전에 자식에게 한 말은 '후손에게 남기는 말'이라는 의미에서 모두 유언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한 모든 말에 법률적 효력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좀 해야 합니다. 어떤 말에 ‘법률적 효력’을 부여할 것인가? 내가 내 자식에게 어떤 말을 남겨야 이것을 자식들이 따르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누군가가 ‘공식적으로’ 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법률로 유언에 대한 내용을 규정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언에 대한 내용을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가장 먼저 이야기해 볼 것이 ‘유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유언이라고 하면,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두 가지 장면이 대표적인데 하나는 부모가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에게 유언을 합니다. 주로 자식들에 대한 고마움, 걱정 등을 임종 전에 전합니다. 다른 하나는 ‘유언장’이 등장하는 경우입니다. 일단 드라마에 유언장이 등장하면, 드라마 내용이 이른바 ‘막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미모의 간병인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는 재벌 회장의 파격적인 유언장이 발표되고, 이를 둘러싼 가족들의 갈등이 폭발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드라마·영화를 보면서, 우리 변호사들은 유언이나 유언장이 과연 효력이 있는지를 매의 눈으로 살펴봅니다. 그런 만큼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드라마에 주로 나오는 자식에게 전하는 고마움, 걱정 같은 내용들은 우리 민법에서 인정하는 유언 내용이 아닙니다. 법률적으로는 효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고마움·걱정 같은 내용에 법률 효력을 부여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민법에 규정된 유언 사항은 상속 재산에 관한 사항, 유산의 처분에 관한 사항, 신분에 대한 사항, 유언의 집행에 관한 사항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상속재산분할 방법과 분할의 금지, 유증, 재단법인 설립, 신탁의 설정, 인지(認知), 친생부인, 후견인 지정, 친족회원 지정, 유언 집행자의 지정·위탁 등입니다. 민법에 규정된 사항이 아닌 내용을 유언해도 ‘법률적’ 효력은 없습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고 신해철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긴 유언은 우리 민법에서 인정하는 유언이 아닙니다. 우리 법률로만 따지자면 효력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그 유언의 내용에 제 머릿속에는 깊이 남아 있을까요? 그의 ‘법적 효력 없는’ 유언은 제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강력한 ‘정서적 효력 있는’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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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ygkoh@kohwoo.com)는 로펌고우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상속, 중소기업과 관련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00인 변호사, 서울시 소비자정책위원회 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할 법률이야기’, ‘스타트업을 위한 법률강연(법무부)’의 공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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