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인천공항에서 바레인 출국길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임성균 기자

이명박정부 시절 빚어진 군·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사건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68) 등 윗선의 구속으로 ‘9부 능선’을 넘었다. 이제 검찰의 칼끝은 ‘몸통’으로 지목된 이명박 전 대통령(76)에게 본격 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2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김 전 장관이 서명한 사이버사령부 관련 문건에 ‘대통령 지시’란 내용이 담겼고 △김 전 장관이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 지시’를 인정한 점에 비춰 이 전 대통령을 의혹의 정점으로 보고 있다. 물증과 진술이 모두 이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셈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계획을 묻는 말에 신중해 하면서도 줄곧 그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의 혐의에 대한 조사가 일단락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본격 수사를 시사했다. 앞서 문무일 검찰총장도 “수사 대상에 한정은 없고, 수집된 증거를 외면하기는 어렵다”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더욱이 검찰이 김 전 장관의 신병을 확보한 만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는 ‘시간 문제’란 얘기가 나온다. 전날 새벽 법원은 “주요 혐의인 정치관여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또 최근 문 총장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신속한 수사’를 당부한 터라 향후 수사가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이 자신들 둘러싼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수사가 수월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군과 국정원을 동원해 친정부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댓글 공작’ 등 사이버 활동을 지시하고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했다는 등의 의혹에 휩싸여있다. 이와 별개로 ‘다스 실소유 의혹’으로도 고발된 상태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특강 차 바레인으로 출국하는 길에 기자들이 관련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자 “상식에 벗어나는 질문을 하지 말라”며 “그것은 상식에 안 맞는다”고 일갈했다. 또 “새 정부의 적폐청산 명목으로 (진행된 수사를)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인지, 감정풀이나 정치보복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도 했다. 군·국정원을 정조준한 검찰 수사를 가리켜서는 “군과 정보기관의 조직을 무차별적이고 불공정하게 다루는 것은 우리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통령은 이종찬·권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과거 참모들과 함께 검찰 수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이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설 경우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다섯 번째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앞서 노태우·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청사에 불려나와 조사를 받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강제구인됐다.

한편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수감돼 1심 재판에 임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65)에 대한 소환조사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뇌물로 건넸다는 의혹의 최정점으로 꼽힌다. 이 일로 ‘문고리 3인방’이라 불렸던 이재만(51)·안봉근(51)·정호성(47) 전 청와대 비서관과 전직 국정원장들이 검찰에 줄소환됐고 매번 법망을 피했던 이·안 전 비서관은 구속됐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특수활동비를 수수한 사실관계 자체를 인정했다. 특히 이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돈을 받았고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의 종착지’라는 의혹이 구체화한 바 있다. 검찰은 현재 청와대로 넘어간 특수활동비의 용처를 집중 수사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이를 비자금처럼 썼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