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정부 국정원장 3명이 전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가운데 특활비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윤선·현기환 전 정무수석에 대한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현직 의원 5명에게 특활비가 흘러갔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이른바 ‘국정원 게이트’ 수사가 정치권 전체로 확대될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13일 이병기 전 국정원장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이 전 원장은 국정원장 재임 시절 자신의 측근 홍모씨를 통해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매달 5000만원씩 국정원 특활비를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원장은 검찰 출두 전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에 지원된 문제로 인해 국민 여러분들에게 실망과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에 상납됐다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원장까지 소환됨에 따라 국정원은 전 정부에서 수장을 지낸 3명이 모두 검찰의 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앞서 검찰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과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이들의 재직 당시 국정원은 전 정부 청와대 실세들에게 매달 5000만∼1억원씩 총 40억여원의 국정원 특활비를 뇌물로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 전 국정원장들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 중이다.

뇌물공여 혐의자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면서 검찰의 칼끝은 다시 수뢰 혐의자인 전 정부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 뇌물의 종착지로 의심받는 박 전 대통령에 조사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조사가 불가피하다”며 “공여자 측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진행된 뒤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500만원씩 특활비를 수령했다는 혐의를 받는 조 전 수석과 현 전 수석도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난주 국정원 자금을 수수한 혐의 조사를 위해 현 전 수석을 소환했으나 현 전 수석이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 전 수석은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의혹사건으로 구속돼 부산지법에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지난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비공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총선 후 국정원 특활비 5억원으로 여론조사 비용을 대납한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가 불가피하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해 총선 직후 현 전 수석에서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교체됐다.

국정원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야 국회의원 5명에게 총 10여차례에 걸쳐 회당 수백만원씩 이른바 ‘떡값’ 명목으로 특활비를 건넸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검찰의 칼끝이 정치권을 향할지도 주목된다.

당시 국정원 간부들은 국회 상임위원회 참석 등을 위해 국회를 방문할 때 일부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외부에서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특활비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왜 이들에게 특활비를 건넸는지, 이를 대가로 의원들에게 어떤 청탁을 했는지, 다른 수뢰자는 없는지 등이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