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 만드는 사람이 집행까지 해도 되나?

[the L] 김광민 변호사의 '헌법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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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사진=공동취재단

헌법 제52조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2017년 9월 11일 국회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헌법재판소는 같은 해 1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퇴임이후부터 계속하여 장기간 소장 권한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에 더해 같은 해 3월 퇴임한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도 인선되지 못하고 있었다. 소장 권한대행에 재판관에도 공석이 발생한 헌법재판소에게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부결은 정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입장에서도 매우 부담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헌법재판소법 제12조 제2항).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하는 구조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국회의 반대에 의해 김이수 재판관의 헌법재판소장 임명이 실패한 이유다. 국회에게 헌법재판소장의 임명동의권을 부여한 것은 삼권분립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다. 국가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어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삼권분립에서 헌법재판소장의 임명권은 대통령이 행사하되 국회가 견제하는 구조다.

김이수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 된 날 국회에서는 대정부질의가 진행되었다. 대정부 질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회 임명동의권을 삼권분립의 측면에서 명쾌하게 해석했다.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총리에게 “한국은 삼권분립 국가가 아닌 제왕적 대통령 1인제 국가”라고 주장하자 이 총리는 “조금 전에 삼권분립을 체험하지 않았나”고 답변했다. 총리의 답변에 황 의원이 머뭇거리자 이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인준을 못 받았다”며 이는 “삼권분립이 살아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충했다.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통해 삼권분립이 무너졌다는 주장을 받아친 것이다.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의 부결은 정부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겠지만 국회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권리행사였다. 이 총리의 말대로 삼권분립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국회 임명동의권은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장치다. 반대로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수단은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거나 공포를 거부함으로써 국회를 견제할 수 있다. 국회(입법부)의 고유권한인 입법권에 대한 정부(행정부)의 견제다.

입법권은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행정부는 재의요구권 등으로 입법부를 견제한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오히려 행정부가 입법부 못지않게 많은 법안을 발의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법률을 국회가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량도 방대하거니와 매우 전문적인 분야의 법률은 국회의원들이 입법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다. 때문에 지엽적이거나 구체적인 법률안은 주로 정부에서 입법하고는 한다. 이를 정부입법이라고 한다. 헌법은 법률안 제출권을 국회의원과 정부 모두에게 부여하고 있다.

기술이나 과학적 지식을 통해 사회의 사상적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을 뜻하는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와 관료를 뜻하는 뷰로크라트(bureaucrat)의 합성어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는 과학·기술·경제 등의 전문적 지식을 기반으로 국가를 이끌어가는 관료를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테크노크라트들은 주로 기회재정부, 국세청, 건설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과학·기술이나 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정부부처에 포진하여 관련된 제도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한다. 정부입법은 대부분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부입법과 국회의원입법 간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19대 국회를 기준으로 입법발의 대비 처리 비율은 정부입법이 약 66%인데 반해 의원입법은 39%에 그쳐, 정부입법이 의원입법보다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확률이 월등히 높았다. 이는 전문분야에 관한 법률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집단인 테크노크라트들이 제정하다 보니 그만큼 완성도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전문분야를 다루는 법률안을 분석하는데 한계가 있어 심도 깊은 심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역시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후자가 원인이라면 정부입법이 국회의 온전한 심사를 받지도 않고 발의된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입법이라도 정부가 발의하였을 뿐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받아야 하고 본회에서 최종 통과되어야 비로소 법률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정부입법 또한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하였을 뿐 입법행위는 국회가 한 것으로 국회의 입법권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의원입법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정부입법안의 통과율을 고려해보면 국회가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오래된 자료지만 2009년 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조사한 사안에 따르면 정부입법에 의한 법률 중 위헌결정을 받은 수가 의원입법의 경우 보다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입법에 의한 법률이 위헌결정의 많은 대상이 되는 것은 정부입법이 조세나 각종 규제규정 등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위헌의 소지가 컸음에도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통과된 이유도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요소가 있는 법률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와 법사위 그리고 본회의까지 무사통과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삼권분립 체제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정부에 주어진 것은 법을 만드는 주체와 행사하는 주체를 나누어 상호 견제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법을 실행하는 주체가 제정까지 한다면 삼권분립이 추구한 견제와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정부입법은 자칫 법을 시행하는 주체인 행정부가 입법권까지 행사하여 정부가 스스로 행사할 법을 만들기까지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정부입법에 의한 법률의 위헌결정 건수가 의원입법의 그것에 비해 3배나 많음에도 통과율은 의원입법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삼권분립의 붕괴가 단순한 기우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세금을 걷는 국세청이 자신들의 행정편의에 맞게 조세법까지 만든다면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불 보듯 당연할 것이다.

국회가 국가의 운영에 필요한 모든 법률, 특히 전문적인 분야의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국회에는 입법 및 정책과 관련된 사항을 조사·연구하여 그 결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국회의 위원회와 국회의원에게 제공함으로써 국회의 입법 및 정책 개발을 강화하기 위한 입법·정책조사기관인 입법조사처가 있다(국회법 제22조의 3). 이에 더해 국회의원에게는 9명의 보좌진이 지원된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는데 다양한 도움을 준다. 국회가 입법조사처와 보좌진 등 가용한 다양한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고 성실히 활동한다면 정부입법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결코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근래 우리사회의 최대 화두는 청와대의 블랙·화이트리스트, 국정원 댓글,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각종 채용비리 등 권력형 비리문제일 것이다. 이들 문제는 모두 무소불위의 정부권력에 의해 자행된 사건들이다. 정부가 적절한 견제를 받아 권력 간 균형이 이루어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권력의 추가 행정부에 쏠리게 되는 정부입법의 증가가 우려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정부입법이 정부의 권한강화가 아닌 효율적 행정을 위한 전문관료의 긍정적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국회가 입법권을 성실히 수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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