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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쪽지예산'…예산 낭비를 위한 '쩐의 전쟁'

[the L] 김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사진=뉴스1

헌법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간혹 황당한 예산집행으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고는 한다. 인구 3만여 명의 소규모 도시에 예술의 전당과 맞먹는 규모의 국악당이 지어졌다거나 황량은 들판에 공사비 수십억 원 규모의 지역 특산품 전시장이 들어서 방문객도 없이 유지비만 지출되는 식이다. 또는 도로를 짓겠다며 사업타당성이나 실행방안을 마련하지도 않고 예산만 덜컥 따와 수년 동안 첫 삽도 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황당한 예산 뒤에는 대부분 “지역 출신의 아무개 의원이 힘을 쓰셔도 예산을 따왔다”며 국회의원이 등장하고는 한다.

매년 11월이면 국회에서는 소위 ‘쩐의 전쟁’이 시작된다. 대부분 기업들이 회계연도를 3월 1일부터 다음 해 2월 마지막 날까지로 하는데 반해 정부의 회계연도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다. 정부는 국가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여야 하고 국회는 이를 심사하여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하여야 한다(헌법 제54조 제2항). 정부예산안이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1월 말까지는 모든 심사가 끝나야 한다. 때문에 국회는 매년 11월이면 막바지 예산안 심의로 분주해진다.

예산안 심의로 분주해지면 국회에는 쪽지가 난무하기 시작한다.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편성지침에 근거하여 작성된 각 부처의 예산요구서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를 거쳐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종합심사를 받게 된다. 예결위에는 소위원회로 계수조정소위원회가 있다. 계소조정위는 정부 예산안에 대한 예결위의 분과별 심의 결과를 모아 다음 년 예산의 총 세입과 세출이 맞는지 검토하며 정부 예산안을 사실상 최종적으로 증액·삭감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료 의원들은 계수조정위 의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쪽지를 날린다. 자신 지역구와 관련된 예산을 증액해 달라는 청탁이다. 이를 통해 예산안 심사 막바지에 급조되어 편성된 예산을 ‘쪽지예산’이라고 한다.

정부예산안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조정되는 것은 1% 내외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미미하다. 국회가 예산심의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공무원 인건비나 매년 일정 수준 반복되는 계속 사업비 등을 수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은 사회간접자본(SOC) 등 일부 분야 한정될 수밖에 없다. 

‘쪽지예산’은 개인들이 저마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기 전 의원들이 예산편성요구를 쪽지에 써 계수조정위에 전달하던 관행에서 유래된 용어다. 모든 의원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지금은 카카오톡과 같은 SNS서비스가 쪽지예산 청탁의 주요수단으로 쓰인다고 한다. 쪽지예산은 심의 막바지에 급조되어 사업타당성 등이 검토되기 어렵고 국회의원의 지역구에 대한 선심성 사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예산낭비로 이어지기 쉽다. 황량한 들판위에 수십억 원짜리 건물은 이렇게 지어지고는 한다.

특히 지금 한창 진행 중인 2018년도 예산안 심의는 지방선거를 5개월 정도 남겨두고 이뤄지는 것이라 의원들 간 쪽지예산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선심성 예산을 통해 지역구 민심을 다잡겠다는 의도다. 더욱이 2018년도에는 SOC 예산이 20%나 삭감되어 한정된 예산을 놓고 의원들 간 이뤄지는 쩐의 전쟁은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쪽지예산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먼저 위헌소지가 크다. 헌법은 국가예산을 편성권은 정부에 심의·의결권은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편성은 정부가 하되 국회가 이를 심의·의결하도록 한 것이다. 때문에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예산의 금액과 관련하여 국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삭감밖에 없다. 각 항의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비목을 설치한다면 예산편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계수조정위 과정에서 쪽지로 예산이 증액되는 것은 예산의 편성에 해당할 위험성이 크다. 국회가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쪽지예산은 예산안에 대한 소관상임위의 심사권을 침해할 가능성 또한 크다. 예결위가 소관상임위원회에서 삭감한 세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게 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에는 소관상임위원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국회법 제84조 제5항). 예산안에 대한 소관상임위의 의견이 예결위에서 무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쪽지예산에서는 이러한 동의절차가 무시되고는 한다. 예산안 심의기간에 임박하여 이루어지는 계수조정위의 긴급성이라는 국회의 관례 때문이다. 쪽지예산이 국회법을 위반할 소지 또한 큰 것이다.

쪽지예산은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에 위반될 소지도 가지고 있다. 김영란법은 특정 개인·단체·법인에 예산이 배정되도록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행위를 부정청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예산이 배정되도록 계수조정위 의원에게 청탁하는 행위가 김영란법이 규정한 부정청탁에 해당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쪽지예산은 국민의 혈세로 구성된 국가 예산의 낭비라는 가장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예산은 엄격한 타당성 조사를 통해 필요한 곳에 적절한 금액이 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 예산심의 막바지인 계수조정위에서 동료 의원의 청탁으로 급조된 쪽지예산이 엄밀한 타당성 조사를 거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관람객도 없는 수십억 원짜리 건물이 지어지고 예산만 쌓아둔 체 공사는 개시도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산낭비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예산편성권이 정부에 독점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예산은 국민의 세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때문에 예산은 국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국회에서 편성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이에 더해 정부가 집행할 예산의 편성권을 스스로 행사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예컨대 미국은 예산편성권 자체가 의회에 있다. 정부의 예산안은 의회 예산심사의 참고자료로 활용될 뿐이다. 프랑스는 의회의 세부예산 조정권이 보장되어 있다. 한국과 같이 예산편성권이 정부에 독점된 것이 예외적인 형태라는 주장은 일견 타당한 점이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회는 끊임없이 예산편성권 중 일부를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산편성권의 제한은 헌법에 명기된 사항이기 때문에 개정은 어렵다. 때문에 차기 개헌과정에서 예산편성권 중 일부를 국회에 부여하는 내용이 논의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전체 예산 중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부 SOC 예산을 둘러싸고 국회 계수조정위에서 벌어지는 쪽지 전쟁을 보면 과연 국회에 예산편성권을 부여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의문을 지우기는 어렵다. 국회에 예산편성권이 부여된다면 전국 각지에 관람객이 없는 전시관과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잠자는 예산들이 즐비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담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국회는 국민들의 혈세인 예산이 적절히 편성되고 집행되는지 감시해야 한다. 만약 정부가 예산안을 허투루 편성해 낭비한다면 단호하게 삭감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쪽지예산을 통해 국회가 앞장서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에 예산편성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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