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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선씨/사진=뉴스1 |
"어이가 없네." "나한테 이러고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바로 '음성지원' 됐을 텐데요,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의 주인공 조태오(유아인 분)의 대사입니다. 안하무인의 재벌 3세 조태오는 폭언과 폭행을 일삼으며 사는, 이른바 '갑질'이 체화된 인물입니다. '돈이 법보다 세다'는 게 그의 신념이죠.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씨(28)가 술자리에서 대형로펌 변호사들에게 "너희 아버지 뭐 하시냐" "허리 똑바로 펴고 있어라" "날 주주님이라 불러라" 등의 막말을 한 것인데요. 술 취한 자신을 부축하던 한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또다른 변호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등 폭행까지 했습니다.
지난 9월 벌어진 이 사건은 하마터면 묻힐 뻔 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변호사들이 형사고소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당 로펌에서는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법을 다루는 변호사들이 법적인 해결을 피한 걸까요? 김씨 사건으로 드러난 변호사 업계의 현실과 현행법의 한계를 짚어보려 합니다.
◇대형로펌도 고객에겐 '절대 을'
우선 이 사건을 통해 변호사가 클라이언트(고객 및 고객사)와의 관계에서는 절대적인 '을'이란 점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반대로 클라이언트는 '갑', 더욱이 대기업 클라이언트의 경우 '슈퍼 갑'인 셈이죠.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왜 을이냐고요? 클라이언트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변호사는 법률'서비스' 제공자이기 때문입니다. 로펌 입장에선 문제를 키울 경우 사건 수임이 끊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겁니다.
김씨를 포함한 한화가(家)는 이 로펌과 10년째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로펌은 2007년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을 수임한 것을 시작으로 한화가의 각종 사건을 맡아왔습니다.
더 나아가 해당 로펌은 한화뿐만 아니라 주요 대기업을 두루 상대해왔습니다. 김씨 폭행 사건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은 여러 대기업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한 조치라고 볼 수 있는데요. 한화를 고발하고 나설 경우 또다른 고객사인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 로펌은 고객 충성도가 낮다" "이 로펌은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요 대기업들이 이른바 6대 로펌에 고루 사건을 맡기는 것은 로펌마다 경쟁력 있는 분야가 다르기도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이 대형 로펌들이 자신의 적이 되는 걸 막으려는 포석이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처벌 원치 않으면 사건 종결?
김씨의 행동은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실제로 형사처벌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피해 변호사들은 공식적으로 김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사법처리를 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입니다. 김씨가 퍼부은 막말도 모욕죄로 처벌하려면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반의사불벌죄와 구별되는 '친고죄'의 한계입니다.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 김씨와 피해 변호사들이 밝힌 입장을 보면 이 같은 현행법의 틈새를 이용해 사법처리를 피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씨는 "피해 변호사들에게 사과를 했더니 '놀라기는 했지만 괜찮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변호사들도 최근 경찰 조사에서 "언론 보도대로 폭행이 있었던 건 맞지만 김씨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그외 추가 피해는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또 김씨는 사과문에서 "일일이 찾아뵙고 잘못을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다" "깊이 반성하며 적극적으로 상담과 치료를 받겠다"고 했는데요. "합당한 처벌을 받겠다" "죗값을 치르겠다"와 같은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현재 본인에게 적용된 혐의가 반의사불벌죄, 친고죄라는 사정을 십분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상습폭행, 업무방해 등 다른 혐의가 적용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을 확보하고 목격자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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