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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밀장부 해독해주면…" 배신당한 암흑가의 '대부'

[the L]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무소불위' 알 카포네, '플리바게닝' 수사로 처벌…'큰 정의' 위한 '작은 정의'의 희생


1920년 미국 시카고의 범죄조직 '조니 토리오 패밀리'에 21세 청년이 새로 들어왔다. 한쪽 뺨에 난 깊은 상처 탓에 '스카페이스'(Scarface·흉터 난 얼굴)로 불린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수완으로 순식간에 중간보스의 자리에 오른다.

급기야 1925년 라이벌 갱단의 기습으로 크게 다친 토리오가 현역에서 은퇴하자 그는 조직의 보스 자리까지 꿰찬다. 이후 밀주, 매춘, 도박 등으로 매년 1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쓸어담으며 미국 '암흑가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그가 바로 영화 '대부'와 '언터처블'의 실제 모델이 된 알 카포네다.

카포네는 1929년 2월 '성 발렌타인데이 대학살'을 비롯해 수많은 폭력·살인 사건을 지시했지만 1930년까지 단 한번도 처벌받지 않았다. 시카고 시장부터 말단 경찰까지 모조리 뇌물로 매수한 탓이었다. 보다못한 연방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찾은 방법이 그를 탈세 혐의로 기소하는 것이었다. 미국 국세청(IRS)을 중심으로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수사팀은 카포네 조직의 비밀장부를 확보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내용이 온통 암호 투성이여서 해독이 불가능했다. 이때 수사팀이 주목한 인물이 카포네 조직의 회계사로서 그 비밀장부를 직접 만든 레슬리 셤웨이였다. 수사팀은 셤웨이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탈세 혐의에 대해 선처하겠다고 제안했다. 거래가 성사됐고 이후 셤웨이는 카포네 몰래 비밀장부를 해독해줬다.

결국 카포네는 1931년 탈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시카고 연방법원은 그에게 유죄 판결과 함께 징역 11년, 벌금 5만달러를 선고했다. 이후 악명 높은 앨커트래즈 교도소 등에서 복역한 카포네는 형기 만료보다 이른 1939년 출소했다. 그러나 과거의 권세(?)는 되찾지 못한 채 1947년 48세의 나이에 매독으로 숨졌다.

만약 회계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카포네의 범죄 행각은 더 오래 지속됐을 공산이 크다. 카포네를 도와 탈세에 관여한 회계사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카포네라는 '거악'을 제거하는 것과 일개 회계사를 처벌하는 것의 무게가 같을 수는 없다. '큰 정의'를 위해 '작은 정의'를 희생한 셈이다.

자신의 죄를 자백하거나 다른 사람의 범죄에 대해 털어놓는 것을 대가로 선처를 약속받는 것을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또는 '유죄협상제'라고 한다. 카포네 수사팀이 회계사를 상대로 했던 거래가 대표적인 사례다. 보스가 지시하고 부하가 이행하는 조직범죄 수사에서 부하들로부터 보스의 범죄 혐의에 대한 진술을 끌어내는 데 주로 활용된다. 플리바게닝은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선 일반화돼 있고, 대륙법계 국가 중에서도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 이미 도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플리바게닝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다보니 '몸통'은 빠져나가고 '깃털'만 처벌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회의원은 빠지고 보좌진만 처벌받은 정치권의 수많은 뇌물 사건들이 정말 보좌진의 단독 범행들이었을까? 이런 사건에서 보좌진들이 '꼬리 자르기'식으로 혼자 뒤집어쓰고 출소 후 의원이 보좌진의 자리를 챙겨주는 관행이 있음은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회장을 지낸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1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전 전 수석의 비서관 출신 윤모씨가 지난 25일 구속기소됐다. 반면 같은 날 전 전 수석은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구치소를 유유히 걸어나갔다. 물론 전 전 수석은 정말 윤씨의 범행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윤씨가 전 전 수석의 개입이 있었다고 진술했더라도 결과가 같았을까? 검찰 안팎에서 플리바게닝 허용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플리바게닝 도입에는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적어도 공범들 가운데 가장 죄가 무거운 피의자를 자백이나 수사 협조를 이유로 선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검찰이 선처를 내세워 무고한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잡힌 플리바게닝 도입 논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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