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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도 못하는데 왜 열심히 하나"…고법 부장판사가 뭐길래

[the L] [서초동살롱] 대법관 전까지 사실상 유일한 판사 승진 사라져…성실한 재판 독려할 인센티브 마련돼야

/사진=뉴스1


지난 22일 서초동이 한바탕 술렁였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사법연수원 25기 이하의 법관에 대해 내년 정기 인사부터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 심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였죠.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진해온 법원 인사제도 개혁 작업의 '1호 결과물' 입니다. 도대체 고법 부장판사가 뭐길래 첫번째 개혁 대상이 됐을까요?

법적으로 판사는 대법관이 되기 전까지는 승진이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법관의 꽃'으로 불리는 고법 부장판사는 이제껏 판사들이 대법관 전까지 '사실상' 승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로 꼽혀왔습니다. 정원이 약 150명으로 제한돼 있어 누구나 꿈꾸지만 모두가 오를 수는 없는 자리죠. 고법 부장판사는 법원장과 대법관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승진코스였습니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법 부장판사에겐 전용 차량 등 각종 혜택도 주어집니다.

문제는 고법 부장판사가 되려면 인사 평가와 승진 등 판사들의 인사권을 틀어쥔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헌법이 규정한 법관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얘기죠.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올초 전국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법원장·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한 법관이 보직·평정·사무분담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데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88%가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고법 부장판사 심사에서 탈락한 경우 사표를 던지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오랜 경력을 지닌 법관들이 법원을 떠나는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재판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전관예우 문제의 심화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일선 판사들은 고법 부장판사 보임 심사 폐지를 반기고 있습니다. 선배가 내린 판결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이유에서죠. 승진 경쟁 탓에 재판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등의 압박도 덜해질 거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나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사실상의 승진이 사라지다보니 판사들이 재판을 열심히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죠. 독일의 경우 법관들에게 종신직이 보장되다보니 판사들이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도 이렇게 된다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전관 출신 변호사는 "고법 부장판사가 없어지면 경쟁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지금까지 고법 부장판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하던 판사들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누가 열심히 뛰겠느냐"고 말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법관에 대한 평가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어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고법 부장판사 보임 심사를 폐지하는 건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일하는 판사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사라지는 것도 안 될 일입니다. 판사들에게 과중한 재판이 몰려 고효율의 재판 업무가 요구되는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대안으로 "판사들의 직업 윤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판사들이 독립적인 판결을 내리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김 대법원장이 좋은 해법을 찾길 기대합니다. 사회적으로도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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