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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네가 포기한다고 말하면 나는 협박할 거다. 배신하면 끝이다. 칼로 목을 칠 거다."
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 범죄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무시무시한 이야기죠. 지난해까지 이런 '강령'을 두고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범죄조직이 있었습니다. 이 조직의 이름은 '행복팀'입니다. 농아인을 위한 복지사업에 투자하면 고액의 이익을 남겨주겠다는 말로 153명을 속여 96억원을 뜯어낸 사기 조직입니다.
충격적인 건 행복팀 조직원들도, 피해자들도 농아인이었다는 점입니다. 장애인이 '행복'을 미끼로 같은 장애인을 등쳤다는 것이죠. 이 사건은 투자사기 사건으로는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돼 더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법원이 지난 23일 이 조직의 '배후 수괴'인 김모씨(46)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이번엔 이 행복팀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순종한다" 충성 세뇌…법원 "통솔체계 갖춘 범죄단체"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농아인협회 지역협회장이었던 홍모씨가 '행복의 빛'이라는 농아인 단체를 결성한 시기입니다. 홍씨는 행복팀이 썼던 것과 똑같은 수법으로 농아인들로부터 투자금을 뜯어냈습니다. 이 범행에 김씨도 관여했습니다. 홍씨는 결국 사기 혐의로 2011년 10월 구속됐다가 2013년 1월 가석방됩니다.
홍씨가 구속돼 있던 2012년 김씨는 이 행복의 빛이란 조직을 전국 단위로 키우기로 계획합니다. 초기엔 '하노보파'라는 이름을 썼는데 하얀팀·보라팀·노랑팀·파랑팀이 모였다는 의미입니다. 김씨는 전국을 4개 구역으로 나눈 뒤 각 팀 대표들에게 하나씩 관리를 맡겼습니다. 그러면서 대표들로부터 "절대 배신하지 않겠음을 공약합니다. 복종하겠습니다"라는 '충성서약서'를 받았습니다.
김씨는 정체를 숨기고 막후에서 움직였습니다. 측근 이모씨와 4개 팀을 감독하는 총괄대표 한모씨를 통해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자신은 '농아인을 위해 복지사업을 하는 90대 재력가' 행세를 했습니다. 행복팀 간부들은 김씨를 '제일 높으신 분'으로 부르면서 조직원들을 모집했고, 총괄대표-지역대표-팀장-팀원 순의 계급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은 하급자들에게 "제일 높으신 분의 은혜를 입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고 부르심 받을 때까지 잘 따라오면 된다"는 내용의 수화동영상을 반복적으로 게시하게 하는 방식으로 '충성 세뇌'를 시도했습니다.
충성 세뇌 작업은 오프라인에서도 이뤄졌습니다. 김씨 등 행복팀 간부들은 월 2~3회 조직원들을 펜션이나 식당에 불러모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단합대회를 열었습니다. 행복팀을 나가거나 정보를 누설하려는 정보원은 협박으로 억눌렀습니다. 행복팀은 이런 식으로 2012년 1월부터 5년 간 몸집을 불려 수백명의 회원이 소속된 대규모 단체가 됐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행복팀은 범죄단체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행복팀은 김씨를 정점으로 해 수직적 위계질서를 갖추고 있었다"며 "지역별 조직, 통솔체계를 갖춘 형법 제114조의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목숨까지 앗아간 행복팀…'감경 조항' 적용된 이유는
이 사건은 '농아인 감경'으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형법 제11조는 농아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농아인의 지적능력은 일반인과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형량을 정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김씨 등 피고인들도 농아인이기 때문에 이 조항의 적용대상이었습니다.
행복팀 피해자들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이 조항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었습니다. 행복팀의 교묘한 범죄수법과 범행결과를 고려할 때 농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을 깎아줘서는 안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행복팀 피해자를 보면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 대출을 받아 투자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중 집을 담보로 잡았다가 속은 것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택했다가 법대로 형법 제11조를 적용해 형을 감경했습니다. 그 결과 김씨에게 선고할 수 있는 형량 범위는 징역 20~50년으로 정해졌고,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김씨가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면서 반성하지 않는 점,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등 유·불리한 정상을 모두 고려한 결과입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탐욕을 채우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환상을 심어준 후 믿음을 저버리고 그들의 행복을 빼앗았다"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씨는 선고 이틀 만에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범행에 가담했다가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행복팀 간부 윤모씨도 함께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항소심에서는 어떤 판단이 내려질까요? 소리없이 눈물만 흘려야 했던 행복팀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씻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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