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미투연대의 대표를 맡았다. 남 대표에 따르면 그 역시 동료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학교에 의해 2차 가해를 당하다 결국 학교 밖으로 쫓겨난 피해자다. 2년 8개월간의 법정 투쟁 끝에 남 전 교수의 성추행 가해 혐의자 A교수는 1심에서 벌금 7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받았다.

이날 세미나에서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복지기관' 사례를 발표하는 박경진 전 상담사는 복지기관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에 문제제기했다가 오히려 해고됐다. 'STX' 사례를 발표한 실비아(가명)씨는 상사에 의한 성희롱을 말한 뒤 이어지는 집단적인 2차 가해를 견디다못해 사직했다.

피해 사례들이 하나 둘 수면 위로 올라오자 숨어있던 피해자들이 모였다. 이렇게 연결된 피해자 40여명과 이들을 지지하는 이들까지 800여명이 연대를 결심했다. 문화기획자와 방송사 PD, 전직 대기업 법무팀 직원, 상담사까지 분야를 불문하고 성폭력 피해자는 어디에나 있었다.

◇"고발·자성 나오지만 정작 피해자 목소리는 사라져…직접 나선다"

이들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피해를 말한 뒤 성폭력을 해결하겠다고 만들어진 회사내 조직도, 정부 기관도, 사법기관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거나, 자신의 업무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기관으로 역할을 미루거나, 덮고 지나가자며 회유했다. 이들이 직접 나선 이유다.

"각계각층에서 성폭력 고발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책에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담겨있지 않아요. 오히려 피해자는 또 다시 소외되고 있죠.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해요. 직접 실효성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조직과 공권력에 의한 2차 가해를 감시할 겁니다"(남정숙 대표)

같은 피해를 공유한 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몸으로 체험했다. 성폭력 가해자도 문제지만, 그 뒤 이어지는 조직과 정부 기관, 사법기관에 의한 2차 가해는 더 큰 좌절을 안겨줬다. 이들이 '권력형 성폭행' 그리고 '2차 피해'를 첫번째 세미나의 주제로 삼은 이유다. 소수의 가해자가 아닌 사회 전반에 깔린 '가해자 문화'를 하나씩 바꿔나가 볼 생각이다. 물론 금방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래, 꾸준하게, 끈질기게 이 일을 해보려고 한다.

"여러 피해자들을 만나보니 가해자들 행동이 똑같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성폭력이 일어나는지, 성폭력 피해를 말하자 조직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하나같이 똑같았어요. 피해를 당하고 나니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고, 막상 찾아간 곳에서는 도움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죠. 이곳에는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에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해 본 사람들이 모여있어요. 지금도 진행형이고요. 좋은 선례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법적인 방법 뿐이 아니에요. 성폭력을 저지르면 사회에 발붙이고 살 수 없구나,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할거에요."(강민주 전남CBS PD)

강PD 역시 전남CBS 내에서 일상적인 성희롱에 시달렸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해고를 통보받았다.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내 결국 복직됐지만,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지금도 안 좋은 소문 등 2차 가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다음 피해자는 어려움 없이 문제제기 할 수 있도록, 그에 앞서 더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끝까지 싸워 좋은 선례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미투연대의 첫번째 공식 사업은 이미 시작됐다. 중앙대 조소과에서 벌어진 교수 성폭력 사건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대학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고, 가해자는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학교로 복귀하는 일이 되풀이돼왔다. 이들은 가해자에게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더라도 사회적 책임에서까지 자유로워질 순 없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피해자 상담·법적 지원 연계…'전문가' 양성이 목표"

무엇보다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을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다. 다른 피해자 단체와 연계해 대처 방법을 고민하고 법률지원과 심리상담 등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전문가 양성'이 가장 큰 목표다.

"우리나라에 전문가가 있나요? 피해를 당하고 전문가를 찾아 다녔는데 피해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문가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근로감독관이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았는데 왜 성폭력 피해를 당했느냐'는 얘기를 하고, 피해자 행실을 문제삼으며 모욕하는 조직원의 2차 가해 행태를 보고 (피해당할만 했다는) 행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을 해요. 정부 기관 담당자나 상담사, 변호사, 판사까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실비아)

이를 위해 이들은 권력형 성폭력의 형태와 구조 등을 정리해 교육 교재를 제작하고 예방·교육 사업을 통해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앞으로 사회 구성원이 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역시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다.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당장 이룰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도 피해자는 나올 수 있다. 이들은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피해자들에게 "혼자 있지 말라"고 조언했다.

"처음부터 고립돼 혼자 있지 마세요. 참고 넘어가야지 생각할 수 있지만, 조직내 성폭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요. 초반 단계에서부터 도움을 청해야 하고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런데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혼자서 뭔가를 하기는 힘들어요. 참았다가 오히려 문제가 악화된 상태에서는 문제 해결이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도움을 받을 곳을 찾아야 돼요."(실비아) 

이들은 피해자 구제가 법원에서 이뤄지는 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피해자로서 직접 몇년씩 가해자와 2차 가해를 저지른 조직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해봤기 때문에 이같은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이들은 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피해자가 최종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고 구제받기 위해 도달하는 곳은 결국 법정이다. 법정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기록이다.

"사건 전후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기록하는 게 시작이에요. 일관된 진술이 핵심이죠.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해요. 피해자는 모두 잊으려 노력하는데, 그래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힘들어도 모든 피해 상황을 가능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을 남겨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