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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
#아이돌그룹 엑소의 전 멤버 타오가 10년짜리 전속계약을 해지해달라며 SM엔터테인먼트(SM)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근 패소했다. 타오 측은 사실상 노예계약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문제가 없다고 봤다.
#한 전직 아이돌은 개인 인터넷 방송에서 연예업계의 현실을 폭로했다. 그는 "한 그룹이 모든 걸 만들어 활동하려면 5억원은 있어야 된다. 그 5억원이 한 팀의 빚이 된다"며 "인기없는 아이돌은 그냥 빚더미에 앉는다"고 했다.
'아이돌 노예계약'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1세대 아이돌로 불리는 H.O.T 때부터 꾸준히 지적된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섰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돌과 연습생들의 현실을 고려한 판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H.O.T부터 엑소까지…끝없는 분쟁
아이돌 전속계약의 문제는 2001년 H.O.T 멤버 토니안, 장우혁, 이재원이 그룹을 탈퇴하면서 사실상 처음 불거졌다. 이들은 수익구조 등 계약내용을 문제삼다 소속사를 나왔다.
그러다 2009년 배우로 활동하던 고(故) 장자연씨가 각종 접대와 폭행, 성상납에 시달렸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것을 계기로 공정위가 연예인들을 위한 표준전속계약서를 마련했다. 전속기간은 원칙적으로 7년으로 제한하고, 소속사는 연예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럼에도 동방신기부터 걸그룹 카라, 보이그룹 블락비, B.A.P에 이르기까지 법정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수익정산과 배분이 불공정하고 무리한 일정을 강요당했다고 호소했다.
법조계는 표준계약서에 따르더라도 아이돌에게 불리한 조항이 많고, 그나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분쟁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표준계약서상 아이돌이 얻은 모든 수입은 일단 소속사로 돌아간다. 소속사는 연예활동에 들어간 비용을 먼저 회수하고 남은 돈을 아이돌에게 분배한다.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 수익분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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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기간에 연습생 기간은 제외
소속사가 아이돌을 속이고 수익을 제대로 정산해주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신인 아이돌을 데뷔시킨 뒤 해외공연에만 내보낸다면 특히 의심해볼 만하다. 현지 대행사를 끼고 정산서를 '세탁'한 뒤 수익금을 뒤로 빼돌리는 경우가 있어서다. 법률사무소 현율의 송혜미 변호사는 "실제 상담을 해보면 소속사 대표가 '너희가 인지도가 없어서 돈 안 받고 출연했다'며 정산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7년 제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연습생 기간을 전속기간에서 빼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표준전속계약에 따르면 전속기간은 원칙적으로 계약체결일로부터 7년까지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데뷔일로부터 7년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다수다. 아이돌은 대개 데뷔 전까지 2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연습생 생활을 거친다. 사실상 회사에 묶여있는 기간이 최대 17년에 이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기간 동안 연습생은 소속사 허락 없이 어떤 연예활동도 할 수 없다.
데뷔한 후에도 계약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위약벌 조항 때문이다.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위약벌 조항에 따르면 아이돌이 전속계약을 파기했을 경우 '최근 2년 간의 월 평균 매출액 곱하기 남은 계약기간 개월 수'만큼의 금액을 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아이돌이 인기를 얻어 높은 매출을 올릴수록 계약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다.
소속사들은 이밖에도 여러가지 형태의 위약벌 조항으로 연습생들에게 높은 위약금을 부담시킨다. 이에 지난해 공정위는 SM과 YG엔터테인먼트, JYP 등 대형기획사들의 전속계약서를 조사한 뒤 훈련과 매니지먼트에 들어간 비용만 연습생이 부담하도록 위약벌 조항을 고쳤다. 그러나 기준이 되는 투자비를 얼마로 산출할지는 여전히 소속사 마음이다. 엑소 타오의 소송에서 SM은 연습실 인테리어 비용 14억원, 직원 급여 20억원까지 연습생 투자비로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뷔까지 아이돌에게 들인 비용을 회수하려면 일정 정도의 전속기간과 위약벌 조항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소속사들의 입징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공정한 계약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송 변호사는 "실제로 소속사들이 연습생들에게 반드시 회수해야 할 만큼 많은 비용을 들이지는 않는다"며 "가능성 있는 연습생들을 (계약으로) 묶어놓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남자는 군대 안 보내주고, 여자는 '알바' 강요하기도
소속사 대표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기 쉬운 신생, 소형 기획사는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자 아이돌이 원하는 시기에 군 입대를 시켜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공백기 없이 계속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 연습생은 '알바'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성접대까지는 아니지만 전속계약을 앞세워 억지로 술자리에 내보낸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어떤 곳은 대가로 '알바비'를 주면서 기록을 남기다 어느 순간부터 알바비를 주지 않는다. 연습생이 알바비를 달라고 하면 그걸 기록으로 남긴다. 이런 식으로 '본인이 하고 싶어서 했다'는 증거를 남긴다"며 "여자 아이돌이나 연습생들이 전속계약 해지소송에 나서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속계약 해지소송에서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소속사와 아이돌, 연습생은 대등하게 계약을 체결한 일종의 '동업자' 관계였다고 본다. 아이돌이나 연습생 쪽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계약에 따라 부담하기로 한 '투자손해' 정도로 간주한다. 계약체결이나 이행 과정에서 불공정,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음을 입증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러나 학생 시절부터 연습에만 몰두해야 하는 이들이 이런 증빙자료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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