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올해 첫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선출된 판사들이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올해 처음 상설화된 일선 판사들의 협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대법원에 첫번째로 건의한 건 '권역법관' 제도의도입이었다. 권역법관이란 2∼3년마다 지역을 옮기는 대신 한 지역에서 오래 근무하는 법관을 말한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도 권역법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게 판사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른바 '향판'으로 불리다 지역 유착 문제로 2014년 폐지된 '지역법관'이 사실상 부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법관대표회의는 지난 9일 상설화 이후 처음 열린 회의에서 전보인사의 최소화와 권역법관 제도 시행 등의 건의안을 의결했다. 권역법관 제도란 전국을 서울과 수도권, 강원 등 몇개의 권역으로 나눈 뒤 한 판사가 특정 권역 내에서 장기간 근무토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판사들은 2~3년마다 찾아오는 전보인사 때문에 근무환경이 불안하고 전문성을 키우기도 어렵다고 호소해왔다. 잦은 재판장 교체로 사건 처리가 늦어진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권역법관제 도입에 찬성한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근무지를 자주 옮겨다니면 재판을 맡는 판사들의 일과 생활이 불안정해진다"며 "외국에는 우리나라처럼 판사들이 계속 이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판사가 한 지역에 오랜 기간 근무할 경우 해당 지역의 토호나 변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2014년 지역법관 제도 폐지의 계기가 된 '황제노역' 논란이 대표적이다. 광주지법 재판부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을 대신할 노역에 일당 5억원을 쳐준 사건이다. 당시 이런 판결을 내린 판사가 지역법관이었다.

이필우 변호사(입법발전소)는 "권역법관 제도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단일 지역에 오래 근무하는 과정에서 지역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이로 인해 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일반인들의 우려가 먼저 해소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역법관 제도가 시행될 경우 서울과 수도권 등 특정 선호 지역으로 장기 근무 신청이 쏠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변호사는 "대부분의 판사들이 서울 지역에서 민사 재판부를 맡길 원한다"며 "수도권 지역의 권역법관이 늘어나면 다른 판사들이 수도권에서 일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판사들이 잦은 인사 이동으로 전문성을 키우지 못한다는 주장에 대해 다른 변호사는 "전문성 문제는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게 할 게 아니라 지역은 바꾸되 보직은 유지토록 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판사는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여러 측면에서의 검토와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